인구 1700명 유령 마을에서 '영화 성지'로…'대부'가 살려
김지수 기자2026.09.07

원래 배경은 코를레오네, 하지만 "너무 현대화됐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 '대부(The Godfather)'는 마리오 푸조의 1969년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극 중 배경은 시칠리아 팔레르모 주의 마을 코를레오네(Corleone)로 설정돼 있다.
하지만 정작 1971년 촬영을 위해 시칠리아에 도착한 코폴라 감독과 제작진은 코를레오네를 실제 촬영지로 쓸 수 없었다.
이미 현대화가 상당히 진행돼 소설과 영화 속에 담긴 전통적인 시칠리아의 분위기를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당시 근처 타오르미나의 호텔에 머물던 제작진에게 저명한 화가였던 지아니 페니시 플로리스텔라 남작이 대안으로 추천한 곳이 바로 언덕 위 작은 중세 마을 '사보카(Savoca)'였다.
마이클 코를레오네가 사랑에 빠진 마을…산 니콜로 성당·바 비텔리
사보카는 대부 1편에서 마피아 보스의 아들 마이클 코를레오네가 미국에서의 살인 사건 이후 몸을 숨긴 시칠리아의 배경지로 등장한다.
극 중 마이클이 첫눈에 반한 현지 여성 아폴로니아에게 청혼하고 결혼식을 올리는 성당 장면이 촬영된 곳이 사보카의 산 니콜로 성당이다.
가파른 언덕 위에 자리한 이 성당 앞에 서면, 발아래로 펼쳐지는 사보카의 풍경이 영화 속 장면과 고스란히 겹쳐진다.
성당 내부에는 지금도 대부와 관련된 사진과 인쇄물이 전시돼 있다.
마이클이 아폴로니아의 아버지에게 딸과의 결혼을 허락받은 장소로 유명한 '바 비텔리(Bar Vitelli)' 역시 사보카에 실제로 존재하며, 영화 속 그 모습 그대로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아폴로니아의 죽음, 그리고 코를레오네 패밀리의 탄생
극 중 마이클과 아폴로니아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난다.
아폴로니아가 차를 몰던 중 폭탄이 터지며 즉사하는 장면은 마이클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전환점으로 그려진다.
순수했던 사랑이 파괴된 뒤 마이클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범죄 세계에 깊이 빠져들며, 점점 더 냉혹한 '대부'로 변모해간다.
이 극적인 서사의 배경이 된 시칠리아의 촬영지가 바로 사보카였던 셈이다.
대부 1부가 사보카에서, 3부는 팔레르모에서 각각 촬영됐다.
인접 마을 '포르차 다그로'도 함께 스타덤에
사보카에서 버스로 약 20분 거리에 있는 또 다른 중세 마을 포르차 다그로(Forza d'Agrò) 역시 대부 3부작 촬영지로 함께 이름을 알렸다.
이곳의 산티시마 트리니타 교회는 마이클과 케이의 장면이 촬영된 곳으로 꼽힌다.
두 마을 모두 대부 시리즈에 대한 관광 의존도가 상당히 높은 편으로, 영화 한 편이 인접한 두 시골 마을의 운명을 동시에 바꿔놓은 셈이다.
"중세에 갇힌 듯한" 풍경 그 자체가 관광 자원으로
사보카는 원래 인구가 많지 않은 조용한 중세 마을이었다.
좁은 골목을 따라 돌로 지어진 집들이 늘어선 풍경은 마을을 한 바퀴 도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정도로 아담한 규모다.
하지만 영화 촬영 이후 이 소박한 풍경 자체가 강력한 관광 콘텐츠로 재탄생했다.
현재 사보카와 포르차 다그로를 잇는 '대부 투어'는 인근 타오르미나와 카타니아를 거점으로 한 인기 여행 상품으로 자리 잡았으며, 관광객들은 영화 속 명장면이 촬영된 바 비텔리에서 사진을 찍고, 산 니콜로 성당 앞에서 계곡의 파노라마 전경을 감상하며, 현지 가이드로부터 촬영 당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는 코스를 밟는다.
'시네마 투어리즘'의 원조 격…시칠리아 관광의 3대 축
사보카의 사례는 이후 시칠리아 곳곳으로 이어진 '영화 배경지 관광(세트제팅)'의 원조 격으로 평가된다.
시칠리아에는 대부 외에도 '그랑블루'와 '시네마 천국'의 배경이 된 체팔루 등 명작 영화의 무대가 여럿 남아 있는데, 이들 장소는 오늘날에도 문학과 영화 팬들의 발길을 끄는 대표적인 순례지로 꼽힌다.
독일의 문호 괴테가 "시칠리아를 보지 않고는 이탈리아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던 것처럼, 영화가 남긴 유산이 오늘날 시칠리아 관광의 정체성 중 큰 축을 차지하게 된 셈이다.
반세기 넘은 영화가 여전히 지역경제를 떠받치는 이유
전문가들은 사보카와 포르차 다그로의 사례가, 영화 한 편이 지역 경제와 정체성 자체를 재편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라고 평가한다.
1970년대 초 촬영 이후 반세기가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두 마을은 여전히 대부 관련 투어 상품과 촬영지 순례객들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이는 최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가 촉발한 그리스 관광 특수처럼 '세트제팅'이 특정 지역에 미치는 파급력이 일시적 유행에 그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