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이수현 리메이크에 J팝, 韓 차트 안방 차지
박정아 기자2026.09.07

[이미지 출처: 유튜브 채널 '동네친구 강나미 [Kangnami]']
태연 '만찬가' 발매 두 달째 멜론 8위…스트리밍 1년새 29.5%↑
일본 가수의 노래를 한국 가수가 리메이크해 음원차트 상위권에 올리는 일이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프로듀서 강남이 기획한 'J팝 리메이크 프로젝트'를 통해 태연이 부른 '만찬가'는 지난 2일 기준 멜론 일간 차트 8위에 올랐다.
지난 6월 29일 공개된 이 곡은 발매 두 달이 넘은 시점에도 순위가 오히려 상승하는 이례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만찬가'는 일본 싱어송라이터 츠키(tuki.)가 2023년 발표한 동명의 곡을 한국어로 번안한 리메이크곡으로, 원곡 뮤직비디오는 유튜브에서 1억700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한 바 있다.
발매 직후에는 벅스 실시간·일간 차트 1위를 석권하고, 멜론 톱100 13위, 신곡 차트인 핫100(발매 30일 이내)에서는 1위를 차지하며 메이저 차트 전방위에서 흥행을 입증했다.
KT 지니뮤직이 지난 6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월 1일~6월 17일) J팝 장르 스트리밍은 전년 동기 대비 29.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악뮤 이수현도 가세…"시티팝 대표곡을 K팝 감성으로"
남매 듀오 악뮤의 이수현은 지난달 일본 가수 마쓰다 세이코의 대표곡 '푸른 산호초'를 리메이크해 발표했다.
1980년 발표된 이 곡은 J팝이 국내에 정식 유통되기 이전부터 마니아층 사이에서 은밀히 인기를 끌었던 시티팝의 대표곡으로 꼽힌다.
이 밖에도 조성확이 '싱어게인4' 출신 규리와 듀엣으로 리메이크곡 '너에게 약속하는 7가지'를 발매하는 등, J팝 명곡을 한국어로 재해석하는 프로젝트가 가요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모습이다.
태연 '만찬가' 제작진은 가사를 한국어로 번안한 전략에 대해, 원곡이 가진 감성과 메시지를 국내 청취자들이 더욱 자연스럽게 공감하고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지리스닝' K팝의 틈새 파고든 '아날로그 감성'
이런 J팝의 약진은 국내 대중음악 소비 트렌드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직관적인 후크송과 SNS 숏폼 챌린지에 최적화된 '이지리스닝' 위주로 획일화되던 K팝의 틈바구니를 뚫고, 특유의 아날로그 서사와 깊은 감성을 지닌 J팝이 국내 대중음악 시장의 메인스트림을 공략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20대 직장인은 "요즘 음악은 너무 귀만 자극하는 느낌인데, J팝을 들으면 어릴 적 듣던 아날로그 라디오 감성이 살아나는 것 같다"고 밝혔다.
특정 마니아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독자적 영역을 넘어, 이제는 차트 최상위권을 위협하는 주류 장르로 체질 개선에 성공한 모양새다.
2023년 '나이트 댄서'가 물꼬…애니·서브컬처 흥행이 밑거름
이런 흐름의 출발점은 202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가수 이마세의 '나이트 댄서'가 J팝 최초로 한국 음원차트 톱100에 진입한 것을 기점으로 국내 J팝 소비량이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2020년대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과 서브컬처 콘텐츠의 흥행이 겹치며 J팝에 대한 국내 소비층이 한층 넓어졌고, 유튜브 쇼츠 등 숏폼 콘텐츠를 통해 J팝 원곡이 히트하며 자연스럽게 국내 음악방송 출연으로까지 이어지는 사례도 늘고 있다.
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도…원더리벳 2년 새 관객 2만5000→4만 명
J팝의 확산은 라이브 공연 시장으로도 번지고 있다.
국내 최초의 J팝 전문 페스티벌 '원더리벳'은 첫해인 2024년 약 2만5000명이 찾았지만, 지난해는 4만 명 이상이 방문하며 규모가 크게 늘었다.
이제는 국내외 다양한 음악을 함께 즐기는 종합 페스티벌에서도 J팝 아티스트가 헤드라이너로 등장하고 있다.
5~6일 열린 '사운드 플래닛 페스티벌 2026'에는 그동안 국내 아티스트로만 채워졌던 라인업에 일본 밴드 즛토마요가 헤드라이너로 이름을 올렸고, 지난달 '2026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도 일본 시티팝 밴드 오리지널 러브와 걸그룹 하나(HANA)가 출연했다.
후지이 가제 등 일본 아티스트들의 내한 공연도 대형 공연장 전석 매진을 기록하는 등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다.
2000년대 초중반 리메이크 붐 재현될까
업계에서는 검증된 J팝 히트곡과 탄탄한 팬덤을 보유한 국내 가수의 조합이 성과를 내면서, 2000년대 초중반 가요계를 달궜던 J팝 리메이크 열풍이 다시 불지 주목하고 있다.
당시에는 나카시마 미카의 곡을 다시 부른 박효신의 '눈의 꽃', 튜브(Tube)의 명곡을 재해석한 캔의 '내 생에 봄날은', 오자키 유타카의 곡을 리메이크한 포지션의 '아이 러브 유(I Love You)' 등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검증된 원곡의 완성도에 국내 가수의 보컬 색깔과 감정 표현력을 더해 '문화 번역'을 해내는 방식이, 세대를 뛰어넘어 다시 통하고 있다는 평가다.
"일시적 유행을 넘을지"
J팝 리메이크 흥행이 잘파세대(Z세대+알파세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대중성에 기반한 변화일 가능성이 있다.
국내 가수들의 리메이크 프로젝트가 반대로 일본 아티스트의 국내 음악방송 출연과 대형 페스티벌 진출로도 이어지는 등, 양국 대중음악 시장의 경계가 점점 옅어지는 양방향 교류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가요계에서는 이미 후속 리메이크 프로젝트와 협업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런 흐름이 한일 대중음악 교류의 새로운 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