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쪽 동시에 풀지 마세요"…'코 풀기', 이그노벨상 받다
박정아 기자2026.09.07

日 20년 연속 수상…무대에서 다 함께 '팽' 코 풀기 퍼포먼스도
'괴짜들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이 지난 3일(현지시간) 스위스 취리히에서 제36회 시상식을 열고 10개 분야 수상자를 발표했다.
미국 하버드대의 과학 유머 잡지 '애널스 오브 임프로버블 리서치(AIR)'가 1991년부터 매년 노벨상 발표 시즌에 앞서 주최해온 이 상은 "사람을 웃게 하면서 동시에 생각하게 만드는" 연구에 수여된다.
올해 의학상은 '코를 잘 푸는 방법'을 연구한 고(故) 운노 도쿠지 전 아사히카와 의대 명예교수에게 돌아갔는데, 이로써 일본은 올해까지 20년 연속 이그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시상식에서는 연구 내용에 맞춰 참석자들이 다 함께 코를 '팽' 푸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취리히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1977년 발표 논문이 49년 만에 재조명…"우연히 발굴"
이번 수상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수상작이 무려 49년 전인 1977년 발표된 논문이라는 점이다.
운노 교수는 당시 '코를 푸는 법: 코 풀기의 기체역학적 연구'라는 논문을 통해, 코를 풀 때 발생하는 숨의 속도와 이것이 귀에 미치는 압력 변화를 정밀하게 측정했다.
그는 4년 전인 2022년 세상을 떠나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못했고, 대신 아사히카와 의과대학의 다카하라 미키 교수가 대리 수상했다.
반세기 가까이 지난 논문이 수상작으로 선정된 이유에 대해 주최 측은 "우연히 이 연구를 발굴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는데, 이는 연구자가 세상을 떠났더라도 '먼저 웃게 하고, 그다음 생각하게 한다'는 기준만 충족하면 수상할 수 있는 이그노벨상 특유의 방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양쪽 동시에 말고, 한쪽씩 길게"
운노 교수 연구팀이 내린 결론은 명확하다.
코를 풀 때는 양쪽 콧구멍을 동시에 강하게 막아 풀기보다, 한쪽씩 숨을 조금 들이마신 뒤 길게 내쉬며 힘차게 푸는 방식이 비강 내 분비물을 배출하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와 함께 코를 세게 풀 때 귀에 일시적인 압력 변화가 발생할 수 있지만, 이것이 중이염 등 감염을 일으킬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는 점도 함께 밝혔다.
다카하라 교수는 시상식에서 "누구나 매일 당연하게 하는 행동을 진지하게 과학적으로 연구한 점이 평가받았다"며 "과학이 보편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준 연구"라고 소감을 밝혔다.
소변기 물리학·키스의 진화·바퀴벌레 모유까지…10개 분야 총출동
올해 이그노벨상은 코 풀기 연구 외에도 다양한 기상천외한 연구들이 함께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생체역학·경제학·화학·의학·생물학·물리학·기술·후각·평화·토양과학 등 10개 분야에서 수상자가 나왔는데, 대표적으로 화학상은 바퀴벌레의 모유 단백질이 일반 우유 단백질보다 3배 더 많은 열량을 함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인도·미국·일본·캐나다·프랑스 국제 공동연구진에게 돌아갔다.
이 밖에도 소변이 튀는 원리를 분석해 공중화장실 소변기 설계 개선에 시사점을 던진 물리학 연구, 키스의 정의를 진화생물학적으로 정교화한 연구, 독사가 어떤 조건에서 사람을 공격하는지 분석한 생물학 연구, 부유함과 비윤리적 행동의 상관관계를 다룬 경제학 연구, 흙 속에서 면 소재 속옷이 분해되는 속도로 토양 건강을 측정하는 방법을 제시한 토양과학 연구 등이 수상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웃긴 연구와 쓸모 있는 연구는 대립하는가"
이번 시상식은 수상작들이 겉으로는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공공위생과 행동경제학, 생태계 측정, 의료 행동 등 실질적인 과학적 질문을 낯선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공통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소변이 왜 튀는지, 사람들이 왜 아이 사탕을 가져가는지, 흙이 왜 면 섬유를 다르게 분해하는지처럼 사소해 보이는 질문도 수치화된 실험과 반복 검증을 거치면 산업과 생활 인프라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수상작들이 던지는 메시지다.
35년 만에 미국 떠나 유럽으로…"비자 문턱 탓"
올해 시상식에는 또 하나의 변화가 있었다.
지난해까지 35년간 미국에서 열려온 이그노벨상 시상식이 올해 처음으로 유럽(스위스 취리히)으로 무대를 옮긴 것이다.
주최 측은 미국의 비자·이민정책이 강화되면서 해외 수상자와 취재진의 방문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다만 종이비행기를 무대 위로 날리는 전통 세리머니와, 매년 새로 제작하는 독특한 트로피 증정 등 이그노벨상 특유의 유쾌한 시상식 문화는 장소가 바뀌어도 그대로 이어졌다.
올해 트로피는 버섯이 돋은 사람 모양으로 제작된 것으로 전해졌다.
일상의 사소함 속에서 다음 노벨상급 질문을 찾아내는 것
이그노벨상은 매년 실제 노벨상 발표를 앞두고 과학 대중화에 기여하는 독특한 순기능을 해왔다.
사소해 보이는 일상의 행동 하나하나가 정밀한 과학적 검증을 거치면 의료·산업·환경 정책에 실질적인 시사점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수상작들 역시 '웃고 넘길 연구'가 아니라 '다시 들여다볼 가치가 있는 연구'로 재조명받고 있다.
49년 만에 뒤늦게 빛을 본 코 풀기 연구처럼, 앞으로도 오래전 발표됐지만 미처 주목받지 못한 연구들이 이그노벨상을 통해 재발견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