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100개씩 '주사위 똥'…이그노벨상까지 받은 웜뱃
한지훈 기자2026.09.20

세계에서 유일한 '네모난 배설물'…하룻밤에 80~100개
호주에 서식하는 포유류 웜뱃은 동물계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오소리를 닮았지만 캥거루처럼 배에 주머니가 달린 이 동물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작고 검은 정육면체 모양의 똥을 누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약 2㎝인 주사위 모양의 배설물을 하룻밤 사이에 무려 80~100개씩 만들어낸다.
동물의 배설물은 종에 따라 형태가 천차만별인데, 개는 튜브형, 토끼는 작은 알갱이형(펠릿형), 소는 '철퍼덕' 퍼지는 형태의 똥을 눈다.
이런 다양한 형태 가운데서도 자연적으로 정육면체 배설물을 만들어내는 동물은 웜뱃이 유일한 것으로 확인됐다.
"항문이 네모난 게 아니다"…14~18일 걸리는 긴 소화과정이 비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궁금증은 "그럼 항문이 네모난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웜뱃의 항문 모양은 평범한 원형이다.
정육면체 똥이 만들어지는 진짜 비밀은 항문이 아니라, 웜뱃의 유별나게 길고 느린 소화 과정과 대장의 구조에 있다.
웜뱃의 소화 과정은 보통 14~18일이 걸리는데, 이는 사람이 길어야 10시간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긴 시간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 영양소와 수분을 흡수하는 과정을 거치며 음식물은 매우 건조하고 단단하게 변한다.
대장 속 '수평 융기'가 네모 틀을 만든다…"밀가루 반죽으로 케이크 만드는 과정"
이 미스터리를 과학적으로 규명한 것은 미국 조지아공대 패트리샤 양 박사 연구팀이었다.
연구팀은 호주 태즈메이니아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웜뱃의 소화관을 해부해, 장 내부에 얇은 풍선을 넣고 부풀리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웜뱃의 대장 첫 부분에는 변을 입방체 형태로 빚어내는 수평 융기(주름)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반면 대장의 끝부분은 비교적 부드러운 상태를 유지한다.
사람의 대장은 탄성이 거의 없어 잘 확장되지 않지만, 웜뱃의 장은 내용물이 차면 평소보다 지름이 2~3배까지 늘어나는 독특한 탄성을 지녔다는 점도 확인됐다.
양 박사는 이 과정을 "밀가루 반죽으로 서서히 케이크를 만드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그는 또 "지금까지 인류는 말랑말랑한 고체를 다지거나 딱딱한 고체를 잘라내는 방식으로만 정육면체를 만들어왔는데, 웜뱃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세 번째 방법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웜뱃 장 끝에서 8% 지점부터 굳기 시작…길이 2㎝ 규격 그대로
연구팀은 이를 더 정밀하게 확인하기 위해 웜뱃을 직접 해부해 소화기관 내부를 단계별로 살펴봤다.
그 결과 웜뱃의 장 끝에서부터 8%에 해당하는 지점부터 대변이 액체 상태에서 고체 상태로 바뀌기 시작하며, 동시에 2㎝ 길이의 사각형 모양을 서서히 갖춰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정육면체 모양은 배출 직전 한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화관 후반부를 거치며 점진적으로 형성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영역 표시용 진화의 산물"…바위 위에 쌓아도 안 굴러가
그렇다면 웜뱃은 왜 하필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 정육면체 똥을 만드는 것일까.
답은 웜뱃의 생태적 특성에 있다.
웜뱃은 야행성이고 시력이 매우 나쁜 대신, 청각과 후각이 매우 예민하다.
이 때문에 똥의 주된 용도는 냄새를 통한 '영토 표시'인데, 정육면체 모양은 이런 용도에 최적화돼 있다.
둥글거나 불규칙한 형태의 똥과 달리, 각진 정육면체는 바위처럼 좁고 높은 곳 위에도 쌓아두기 쉬운 데다 굴러떨어질 일이 없어,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영역을 표시하는 데 제격이라는 것이다.
웜뱃은 단독 생활을 하는 야행성 동물로 낮에는 굴 속에 숨어 지내다 밤이 되면 나와 풀을 뜯는데, 이런 배설물은 '누가 이 구역에 살고 있는지'를 다른 개체에게 알려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는 역할도 겸한다.
"생물학 하며 이런 똥은 처음"…2019년 이그노벨상 수상
이 엉뚱하면서도 진지한 연구는 결국 과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연구를 이끈 양 박사는 2019년 이그노벨상을 수상하며 하버드대 샌더스 극장 시상식 무대에 올랐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생물학을 연구하면서 이렇게 이상한 모양의 똥은 본 적이 없었다"며 "그런데 어떤 문헌을 찾아봐도 웜뱃이 왜 정육면체 똥을 누는지 답을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는 배설물이라는 소재가 학계에서 금기시되며 충분히 연구되지 못했던 현실을 지적한 발언이기도 했다.
양 박사는 이전에도 다양한 동물의 배설 행동을 연구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2014년에는 포유류들이 오줌을 누는 데 걸리는 시간을 분석해 몸집과 무관하게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자연이 만들어낸 세 번째 제작법을 산업에 응용할 수 있을까"
과학자들은 이번 연구가 재료공학이나 제조업에도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인류가 그동안 고체를 정육면체로 만들 때 '깎아내기'나 '틀에 넣어 다지기' 두 가지 방식에만 의존해왔다면, 웜뱃의 장이 보여준 '탄성 있는 관 속에서 서서히 압축·건조시켜 각을 만드는' 방식은 전혀 새로운 제3의 접근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생체모방(biomimicry) 원리가 향후 제조 공정이나 소재 개발에 어떻게 응용될 수 있을지는 아직 본격적으로 연구되지 않은 영역인 만큼, 이 기묘한 자연의 설계도가 앞으로 어떤 실용적 발견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