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초5부터 베팅한다…도박 경험 청소년 15만 명

김지수 기자2026.09.21
초5부터 베팅한다…도박 경험 청소년 15만 명
소년범 5년 새 6.7배…2021년 50명→2025년 337명 청소년 도박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청소년 도박 입건 건수는 2021년 50명에서 2025년 337명으로 5년 사이 6.7배 급증했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실태조사에서는 도박을 경험한 청소년이 약 15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는데, 이는 공식 검거·상담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숨은 도박'이 훨씬 방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학교의 관리망에서 완전히 벗어난 학교 밖 청소년까지 고려하면, 실제 규모는 이보다 더 클 수 있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시작…첫 경험 '9세 이하' 비중 9.6%→14%로 증가 더 충격적인 건 도박에 발을 들이는 나이가 갈수록 어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 도박을 경험한 나이가 '9세 이하'라는 응답은 2024년 9.6%에서 지난해 14%로 늘었고, '13~15세'라는 응답도 같은 기간 34.5%에서 36.7%로 증가했다. 반면 '16~18세'에 처음 접했다는 응답은 20.6%에서 16.2%로 오히려 줄었다. 청소년 도박의 대부분은 스마트폰을 이용한 사이버 도박 형태로 이뤄지는데,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접속할 수 있고 소액으로도 시작할 수 있어 진입 장벽이 매우 낮다는 것이 문제다. "외고 모범생부터 운동 유망주까지"…2억4000만 원 잃은 10대도 MBC 'PD수첩'이 지난달 취재한 내용에 따르면, 도박에 빠진 청소년들은 성적이 우수한 외고 모범생부터 운동 유망주까지 다양한 배경을 갖고 있었다. 많은 아이들이 교실에서 친구를 통해 도박을 처음 접했으며, 불법 온라인 도박으로 잃은 금액은 적게는 500만 원에서 많게는 2억4000만 원에 달했다. 도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모의 지갑에 손을 대거나 집안 귀금속을 내다 파는 경우도 있었다. 한 학부모는 자녀의 도박 사실을 알게 된 뒤 "같이 죽어버리고 싶었다"고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도박 빚이 부른 2차 범죄…사기·절도·학교폭력으로 확산 불어난 도박 빚은 고금리 사채와 중고거래 사기 강요, 학대 및 폭력 같은 참혹한 2차 범죄로 이어지고 있다. 전두엽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청소년기 뇌 특성상 강렬한 자극에 쉽게 빠져들고, 반복된 쾌락 경험이 성인보다 훨씬 빠르게 심각한 중독 단계로 발전할 위험이 크다. 연 3000억 원대 불법 총판 조직…해외 은신하며 '초호화 생활' 이런 청소년 도박 문제의 배후에는 조직적인 불법 도박 산업이 자리 잡고 있다. 취재 결과 청소년들을 끌어들이는 불법 도박사이트의 모집책, 이른바 '총판'은 연간 3000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 제보자는 총판 운영자가 10년 넘게 법망을 피해 불법 수익으로 초호화 생활을 누리고 있다고 폭로했는데, 공개된 영상에는 이 운영자가 동남아시아의 한 클럽에서 고액권 지폐를 술잔에 말아 뿌리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경찰청은 지난해 11월 1일부터 올해 10월까지 1년간 사이버도박 특별단속을 이어가며, 해외 거점 조직을 중심으로 청소년을 포함한 고액·상습 도박 행위자를 중점 단속 대상으로 삼고 있다. "SNS 광고가 진입로"…젊은 남성 노출 빈도 여성의 2배 청소년이 도박에 쉽게 빠지는 원인으로는 SNS 광고가 지목된다. 영국 링컨대 등 국제 공동연구팀이 국제학술지 '행동 중독 저널'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도박 업체 광고는 문제성 도박 행동을 보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집단인 젊은 남성들에게 집중적으로 노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SNS에서 여성 사용자보다 젊은 남성 사용자의 도박 광고 노출 빈도가 2배 이상 높았다. 연구팀은 광고 노출이 늘어날수록 도박 참여도 함께 증가하는 '용량-반응 효과'가 존재한다고 밝혔는데, 이는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이 취약 계층에게 도박 광고를 더 많이 노출시키는 문제를 시사한다. 경찰, '자진신고제' 도입…"전과 안 남기고 재범률 0.8%" 이런 흐름에 경찰도 처벌 일변도 대신 교육·상담 중심 대응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경찰은 도박에 연루된 청소년이 자진 신고할 경우, 경미한 사안에 한해 입건 대신 훈방 조치하는 '자진신고제'를 운영하고 있다. 자진신고 시에는 전과를 남기지 않고 교육·상담을 중심으로 처리되는데, 이렇게 선도된 청소년의 재범률은 0.8%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월 18일부터 약 두 달간 운영된 '청소년 사이버도박 자진신고 기간'에는 806건이 접수됐다. 경찰은 이런 제도의 효과를 지속 분석하며 전국 확대 단속을 병행하고 있다. 민간·금융권도 가세…하나금융, 3년간 100억 원 규모 예방사업 민간 차원의 예방·치유 노력도 확대되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금융감독원,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경찰청, 서울시교육청 등과 공동으로 청소년 불법도박 예방·치유 프로젝트를 선포하고, 향후 3년간 100억 원 규모의 사회공헌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굿네이버스와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이 함께 운영하는 '도도한 프로젝트'는 예방교육과 인식개선 캠페인, 상담을 연계한 통합형 프로그램으로, 지난해에만 아동·청소년과 학부모, 학교전담경찰관(SPO) 등 총 40만8600명이 참여했다. 처벌보다 조기 발견과 차단 체계를 얼마나 촘촘히 구축할지 청소년 도박이 이제 아이들의 일상과 미래를 흔드는 사회적 재난으로 번지고 있다. 판단력이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청소년은 또래 집단의 분위기나 SNS 광고 같은 작은 유혹에도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만큼, 스마트폰을 통한 불법 사이트 차단 시스템 강화와 학교 현장의 조기 발견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 자진신고제처럼 처벌보다 교육·치유를 우선하는 접근이 재범률을 크게 낮춘 것으로 확인된 만큼, 이런 선도 중심 대응이 전국적으로 얼마나 효과적으로 확대될 수 있을지가 향후 청소년 도박 문제 해결의 관건으로 꼽힌다.

사회 분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