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막 안 깎고"…전기 자극으로 시력 교정하는 기술 등장
한지훈 기자2026.09.30

옥시덴털칼리지·UC어바인 공동연구팀 개발…미국화학회서 발표
칼이나 레이저 없이, 전기 자극만으로 단 1분 만에 시력을 교정하는 신기술이 학계에 발표되며 안과 의료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지난 30일 미국화학회(ACS)와 미국 옥시덴털칼리지, 캘리포니아대 어바인캠퍼스(UC어바인) 공동 연구진은 각막을 절개하지 않고 미세한 전기 자극을 활용해 시력을 교정하는 '전기기계적 재형성(EMR, Electromechanical Reshaping)'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안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으며, 옥시덴털칼리지의 마이클 힐 교수와 UC어바인의 브라이언 웡 교수 연구팀이 주도했다.
"레이저로 깎는 대신 전류로 pH 바꿔 콜라겐 결합 느슨하게"
기존 라식 수술은 정밀한 레이저로 각막 조직을 직접 깎아내 곡률을 맞추는 방식이다.
효과가 빠르고 널리 쓰이지만, 본질적으로 조직을 영구히 제거한다는 점에서 안구건조와 빛 번짐, 눈부심, 각막 구조 약화 같은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다.
반면 EMR 기술은 각막을 이루는 '콜라겐' 단백질의 화학적 성질을 이용해 조직을 부드럽게 성형한다는 점에서 접근 자체가 다르다.
연구팀은 각막에 정밀하게 계산된 미세한 약전류를 흘려보내 내부 산도(pH)를 일시적으로 변화시켰다. 산도가 낮아지면 콜라겐 구조를 단단히 잡고 있던 전기적 결합이 잠시 약해지면서, 각막이 젤리처럼 유연한 상태로 바뀐다.
백금 렌즈 얹고 전류 흘리면 끝…"전 과정 1분"
실제 교정 방식은 비교적 간단하다.
원하는 시력에 맞게 맞춤 제작한 백금 전극 렌즈를 눈 위에 얹은 뒤 약전류를 흘려보낸다.
각막이 부드러워진 상태에서 백금 렌즈의 모양대로 각막이 자리를 잡으면, 전류를 차단해 자연스러운 pH 수치로 되돌린다.
이 과정에서 약해졌던 콜라겐 결합이 다시 강화되면서, 각막은 새롭게 맞춰진 곡률을 그대로 유지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에 걸리는 시간은 단 1분에 불과하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각막 혼탁 완화 효과까지"…부수적 발견도 눈길
연구팀은 이번 실험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부수적 효과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각막이 뿌옇게 변해 기존에는 각막 이식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던 화학적 혼탁 증상까지, EMR 기술을 통해 일정 부분 완화되는 단서가 별도 실험에서 관찰된 것이다.
다만 이는 초기 단계의 가능성 확인 수준으로, 실제 각막 재건이나 혼탁 개선 치료로 이어지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안전성·경제성이 핵심 강점"…비용은 라식의 절반 이하 기대
EMR 기술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안전성과 경제성이다.
조직을 잘라내지 않기 때문에 감염이나 신경 손상 등 기존 시력교정술이 안고 있던 부작용 위험이 현저히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라식 수술 후 흔히 나타나는 안구건조증의 상당 부분은 각막을 '깎아서'가 아니라, 플랩(절편)을 만드는 과정에서 절단되는 신경 때문으로 알려져 있는데, EMR은 이런 절개 자체가 없다는 점에서 구조적으로 다른 접근이다.
여기에 고가의 레이저 장비 대신 간단한 전극 장치만 사용하므로, 수술 비용 역시 라식의 절반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팀은 이와 함께 치료 효과를 원상태로 되돌리는 '가역성'까지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금까지는 동물실험 단계"…사람 적용까지는 갈 길 멀어
다만 아직 "라식·라섹이 필요 없어졌다"고 말하기에는 이르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번 연구는 현재까지 동물실험을 통해 안전성과 효과를 확인한 단계이며, 실제 임상에서 쓰이는 치료법은 아니다.
연구팀은 앞으로 사람의 눈에서도 동일한 효과가 나타나는지, 장기간 각막 형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지, 전기화학적 처리 과정에서 조직 손상이나 염증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지 등을 추가로 검증해야 한다고 밝혔다.
각막이 모양만 바뀌면 되는 조직이 아니라, 빛을 통과시켜야 하므로 투명성을 유지해야 하고 눈의 압력과 외부 자극을 견딜 만큼 구조적으로도 안정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넘어야 할 검증 단계가 여전히 많다.
"동물실험을 넘어 사람 대상 임상시험까지 안전성을 입증하기"
EMR 기술은 '각막을 깎는 수술'에서 '형태를 조절하는 치료'로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의미 있는 시도면서도, 실제 진료실에 도달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동물실험에서 확인된 안전성과 효과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도 재현되느냐가 이 기술의 상용화 여부를 가를 관건이다.
현재 시력교정의 표준은 여전히 라식·라섹·스마일라식 같은 레이저 기반 수술인 만큼, EMR이 이를 대체할 '4세대 시력교정술'로 자리매김하려면 앞으로 몇 단계의 검증 과정을 더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의학·건강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소개된 기술은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연구 단계임을 유의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