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치 아픈 재정 빨대'… 소방관 순직이 불 지핀 추미애 논란
한지훈 기자2026.10.17

부천 화재 순직 후 빈소서 "마음 다해 사과"… 재정 비상 선언 정당성 논쟁도 재점화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국정감사에서 소방 예산을 '재정 빨대'에 빗댄 발언을 두고 논란이 확산하다, 17일 부천 공장 화재로 순직한 소방관의 빈소를 찾아 공식 사과했다.
발언 자체는 지자체 재정 구조를 짚으려는 취지였다는 해명이 나왔지만, 소방관의 순직 소식이 겹치면서 여론의 반발이 커졌고 여당 지도부까지 사과에 나섰다.
국감 답변이 소방 노조 반발·여야 공방으로 번져
논란은 지난 13일 수원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시작됐다.
추 지사가 지난 8월 선포한 '경기도 재정 비상 상황'의 타당성을 따지던 국민의힘 권영진 의원이 소방 재정에서 국비 비중을 넓혀야 한다는 취지로 질의하자, 추 지사는 "의원님 말씀처럼 소방이 가장 큰, 골치 아픈 재정 빨대 같다"고 답했다.
이어 소방 인건비만 2027년에 1조1000억원, 사업비는 5000억원가량이 들어간다는 점을 설명했다.
인건비 규모를 두고 '잡아먹는다'는 표현도 쓴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공무원은 국가직으로 전환됐지만 인건비와 운영 재원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시·도가 부담한다.
올해 기준 전국 소방 재원 가운데 시·도 전입금이 약 69.5%, 소방분 지역자원시설세가 18.6%를 차지하는 반면 중앙정부의 소방안전교부세와 국고보조금은 10.7%에 그친다.
경기도의 경우 전체 소방 재원 1조5655억원 중 9265억원을 도 일반회계 전입금으로 충당한다.
소방 노조 “7만 소방관 명예 훼손”
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는 14일 성명을 내고 "전국 7만 소방공무원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 모독 행위"라며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불완전한 제도가 문제라면 국비 지원 비중을 높여 달라고 정부에 요구하는 것이 도지사의 책무인데, 그 책임을 소방 조직에 돌렸다는 비판이다.
한국노총 소속 한국소방공무원노조도 소방은 누군가의 주머니를 축내는 존재가 아니라 국민이 기댈 최후의 수호자라며 가세했다.
소방관 한 명이 경기도청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경기도는 15일 해명에 나섰다.
해당 발언은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됐는데도 관련 재정을 지자체가 대부분 부담하고 국고 지원 비율은 줄어드는 점을 강조하는 취지였고, 소방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필수 업무라는 입장이다.
순직 소식에 여론 급변… 與 지도부도 사과
사태는 16일 부천의 도장공장 화재가 터지며 급변했다.
추 지사는 현장을 찾아 부상 소방관들의 치료와 회복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지만 '재정 빨대' 발언에 대한 사과 요구에는 이 자리에서 답할 사안이 아니라는 취지로 선을 그었다.
이날 더불어민주당은 이용우 대변인 명의 논평으로 상처받은 소방공무원과 가족에게 사과한다고 밝혔다.
이어 심정지 상태로 이송됐던 김진석 소방위가 17일 끝내 숨지면서 발언의 적절성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주희 원내대변인이 공식 논평으로 사과한 데 이어, 김민석 대표가 추 지사에게 깊은 자성이 담긴 사과를 직접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은 장동혁 대표와 박성훈 수석대변인 등을 통해 소방관 순직 앞에서 책임을 통감하지 않느냐며 공세를 강화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소방대원의 안전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라는 메시지를 냈다.
빈소에서 "마음을 다해 사과"
추 지사는 17일 오후 부천 순천향대 부천병원 빈소를 조문한 뒤 기자들과 만나 "제 의도와 다르게 전달돼 깊은 유감"이라며 "마음을 다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구조적 재정 문제를 설명하다 나온 표현상의 실수였고 소방관을 폄훼할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국감 당시 재정 비상 선언이 과연 비상이라 할 수 있느냐는 추궁이 이어진 끝에 소방 질문이 나왔다며, 국가직화 이후에도 인건비 1조원대를 도가 부담하는데 정부 지원은 8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을 말하려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사과 요구가 나온 현장에서 답하지 않은 데 대해서는 사과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분위기상 적절하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경기도는 추 지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장례위원회를 꾸려 19일까지 3일간 도 차원의 장례를 치른다.
추모 행사 예산 삭감 논란도
경기도가 올해 추경 과정에서 순직 소방공무원을 기리는 '경기소방 119메모리얼데이' 사업비 1억원을 전액 삭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노조는 "말뿐이 아니었다"며 복원을 요구했다.
경기도는 불필요한 행사성 예산을 줄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조는 행사 운영상의 낭비는 바로잡더라도 전액 삭감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재정 비상 선언 공방도 재점화
이번 논란은 경기도의 '재정 비상' 선언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과도 맞물려 있다.
추 지사는 8월 5일 지방채 발행 한도의 99.6%에 육박한 채무, 취득세 감소, 복지 예산 증가 등을 근거로 재정 비상을 선언하고 경비 삭감과 세입구조 개선 등 4대 정상화 방안을 내놨다.
국감에서는 여야 의원들이 경기도 채무 비율이 정부의 재정위기 판단 기준에 못 미친다며 선언의 근거를 따졌고, 행안부 장관이 재정위기 단계가 아니라는 취지로 답했다.
추 지사는 세입 기반은 약해지는데 복지 지출과 채무 부담은 늘고 있다며 정부 지표만으로 실상을 설명할 수 없다고 맞섰다.
소방 재정 발언은 이 공방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소방 노조는 사과의 진정성과 함께 소방 예산 확보와 처우 개선을 위한 구체적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소방 재정의 국비 지원 확대라는 구조적 쟁점은 여야 모두 필요성을 언급한 사안이어서, 이번 논란을 계기로 국가직 소방공무원 재원 분담 구조 개편 논의가 속도를 낼지도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