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이 파산을 향해 달린다"…재정난 겹친 국제기구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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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이후 국제질서의 축이던 유엔이 재정난과 리더십 공백이라는 이중 위기에 직면했다.
최대 분담국 미국의 납부 중단과 대규모 탈퇴 선언으로 곳간이 비어 가는 가운데, 임기 만료를 두 달 앞둔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후임 선출마저 난항을 겪고 있다.
위기의 책임과 해법을 둘러싼 시각은 엇갈리지만, 국제 협력 체계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점에는 이견이 크지 않다.
사상 최대 미납금…”조직 전체가 붕괴할 수 있다"
구테흐스 총장은 올해 초 회원국 대사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미납 분담금 때문에 조직 전체가 붕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25년 말 기준 정규예산 미납액은 약 15억 7천만 달러로 사상 최대였다.
유엔은 올해 정규예산을 약 7% 줄인 34억 5천만 달러로 확정하고 직원 감축과 신규 채용 동결, 시설 유지비 삭감에 나섰지만, 현금 흐름이 여전히 취약하다고 호소해 왔다.
유엔 행정예산위원회도 지난 4월 현금 사정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으며 잔고가 8월 중순 고갈될 수 있다고 밝혔다.
재정난의 가장 큰 요인은 정규예산의 22%를 부담하는 미국의 분담금 미납이다.
유엔 관계자들은 미국이 지난해 정규예산 분담금을 전혀 내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미국의 체납액은 평화유지 활동 분담금까지 합치면 40억 달러를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예산의 약 20%를 분담하는 중국도 납부가 늦어 재정을 압박한다.
유엔 규정상 체납액이 직전 2년 치 분담금을 넘으면 총회 투표권이 박탈될 수 있어, 미국이 내년에 투표권을 잃을 수 있다.
66개 기구 탈퇴 선언…”주권 침해" vs "납세자 보호"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유엔 산하기구 31곳을 포함한 66개 국제기구에서 탈퇴하거나 지원을 중단하는 대통령 각서에 서명했다.
대상에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유엔인구기금(UNFPA) 등이 포함됐다.
미국은 이에 앞서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탈퇴 절차를 밟았다.
미국 행정부는 해당 기구들이 미국의 주권과 경제적 경쟁력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납세자의 돈을 쓰면서도 성과가 미미하다고 주장한다.
루비오 국무장관은 결과와 책임성을 입증하지 못하는 기구에 세금을 쓸 수 없으며 개혁을 요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이 국제기구를 두고 중복된 임무와 불투명한 운영을 비판하며 개혁 압박에 나선 것이다.
미국 정부는 유엔의 잠재력은 인정한다는 태도도 보이고 있으며, 올해 유엔 인도주의 분야에 20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유엔 안에서도 비용 절감과 효율화를 위한 개혁 구상인 ‘UN80’이 추진되고 있다.
반면 구테흐스 총장은 분담금 납부는 유엔 헌장에 따른 모든 회원국의 법적 의무라고 반박했다.
시몬 스티엘 UNFCCC 사무총장은 이번 결정을 미국 스스로에게 해가 되는 '자책골'에 비유했다.
국제 분석가들은 미국이 다자 협력을 워싱턴의 조건에 맞춰 재구성하려 한다고 평가하며, 기후·보건·식량·개발 등 글로벌 공공재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다만 탈퇴는 기구별 절차를 거쳐야 효력이 생기고, 그 전까지는 회원국 지위가 유지된다.
후임 사무총장 선출도 난항
구테흐스 총장의 임기는 12월 31일 끝나지만, 안보리 비공개 예비투표에서 뚜렷한 후보가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코스타리카 전 부통령이 7차 예비투표에서 11표를 얻어 선두를 유지했고 아랍에미리트 출신 인사도 경쟁에 가세했다.
일부 투표에서는 주요 후보에 대한 반대표가 늘어 연내 선출이 가능할지 회의론도 나왔다.
사무총장으로 추천되려면 안보리 15개 이사국 중 9개국 이상이 찬성하고, 거부권을 가진 5개 상임이사국이 모두 반대하지 않아야 한다.
차기 사무총장은 여러 전쟁과 재정난, 약해진 유엔의 정치적 위상을 한꺼번에 떠안게 된다.
한국을 포함한 중견국에는 유엔 중심 다자주의의 지속 가능성이 외교·안보 전략의 변수로 떠오른 셈이다.
"개혁 필요, 그러나 공백 비용은 약자가 치른다"
전문가들은 유엔 개혁 필요성과 재정 위기의 심각성을 모두 인정한다.
미국이 일부를 납부해도 압력은 다소 줄 뿐, 여러 해에 걸친 체납이 해결되지 않으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지원 중단의 공백은 다른 공여국이나 민간, 현장 NGO로 전가되거나 재정 여력이 약한 국가의 보건·인도 지원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
국제사회가 대안으로 분담 구조 다변화와 효율화를 논의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