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하루 1만 번 '깜빡'…펭귄이 살아남는 수면의 비밀

한지훈 기자2026.09.08
하루 1만 번 '깜빡'…펭귄이 살아남는 수면의 비밀
4초씩 마이크로수면 1만 번…합치면 하루 11시간 남극의 턱끈펭귄(친스트랩펭귄)이 독특한 수면 방식으로 혹독한 서식 환경을 견뎌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프랑스와 한국, 독일 등 국제 공동연구진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남극 킹조지섬의 턱끈펭귄들은 알을 품는 번식기 동안 하루 평균 약 1만 번, 4초 안팎의 극도로 짧은 '마이크로수면'을 반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초단기 수면을 모두 합치면 하루 총 수면 시간은 약 11시간에 달하는데, 문제는 한 번에 4초 이상 이어지는 수면이 사실상 거의 없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뇌파 측정 장치를 부착한 펭귄들을 통해 이런 수면 패턴을 정밀하게 확인했다. 포식자 감시하며 알 지켜야…"끊임없는 위협이 만든 진화적 타협" 이런 조각잠 방식이 나타난 배경에는 번식기 특유의 생존 압박이 있다. 턱끈펭귄은 번식 기간 동안 둥지를 떠날 수 없는데, 도둑갈매기(스쿠아) 같은 포식자들이 알이나 새끼를 노리고 끊임없이 주변을 맴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펭귄들은 깊고 긴 잠에 빠져 무방비 상태가 되는 대신, 초 단위의 짧은 수면을 수천 번 반복하며 항상 주변을 경계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쪽으로 진화한 것으로 분석된다. 연구팀은 이런 수면 방식이 잠이라는 생리적 필수 요건과, 포식자로부터 새끼를 지켜야 하는 생존 압박 사이에서 나타난 진화적 타협이라고 설명했다. 짧아도 뇌는 '진짜 수면' 상태…회복 기능은 그대로 작동 주목할 점은 이렇게 짧은 수면이라도 실제 뇌의 수면 상태와 동일한 생리적 특징을 보인다는 것이다. 연구팀이 측정한 뇌파 데이터에 따르면, 4초 안팎의 마이크로수면 동안에도 뇌는 실제 수면 단계에 진입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이런 짧은 수면 조각들이 뇌 스스로 회복 기능을 수행하는 진짜 수면이라는 의미다. 즉 펭귄은 잠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잠을 극도로 잘게 쪼개는 방식으로 필요한 수면량을 채우고 있는 셈이다. 좌우 반구 따로 잠드는 '반구수면'과는 또 다른 전략 동물의 세계에는 이미 잠과 경계를 동시에 해결하는 다양한 전략이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것이 돌고래나 일부 조류에서 관찰되는 '반구수면(unihemispheric sleep)'으로, 뇌의 좌우 반구가 번갈아 잠들면서 한쪽 눈은 뜬 채로 주변을 감시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번에 확인된 턱끈펭귄의 마이크로수면은 이런 반구수면과는 또 다른 전략으로 평가된다. 뇌 전체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완전한 수면 상태에 들어갔다가 곧바로 깨어나기를 하루 수천 번 반복한다는 점에서, 기존에 알려진 동물의 수면 전략 중에서도 극단적인 사례로 꼽힌다. "극한 환경 생물의 생존 전략" 연구에 새 지평 이번 연구는 극한 환경에 서식하는 동물들이 생존을 위해 얼마나 극단적인 생리적 적응을 이뤄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남극이라는 혹독한 환경에서 포식자의 위협에 상시 노출된 턱끈펭귄이 택한 해법은, 잠을 아예 포기하는 것도 아니고 깊은 잠을 자는 것도 아닌, '수면을 원자 단위로 쪼개는' 제3의 길이었던 셈이다. 연구팀은 이런 발견이 수면 부족과 생존 압박이 공존하는 다른 동물이나 극한 직업군의 인간(예: 장거리 항해자, 군인 등) 수면 연구에도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번식기 이후에는 수면 패턴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가 번식기라는 특정 기간에 국한된 관찰인 만큼, 포식 압박이 상대적으로 덜한 비번식기에는 턱끈펭귄의 수면 패턴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추가로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만약 번식기가 끝난 뒤 정상적인 형태의 긴 수면으로 돌아간다면, 마이크로수면이 특정 생존 압박에 대응한 일시적 전략임을 보여주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이런 후속 연구를 통해 동물의 수면과 생존 사이의 진화적 관계를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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