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당 30억 시대…K-콘텐츠, '국제 공동제작'으로 체질 개편
정하윤 기자2026.09.10

[이미지 출처: 유튜브 채널 'Netflix Korea 넷플릭스 코리아' - 케이팝 데몬 헌터스]
10년 새 제작비 최대 10배↑…"한 회사가 감당 못 한다"
한국 드라마 제작 환경이 전환점을 맞고 있다.
2013년 편당 3억7000만 원 수준이었던 국내 드라마 제작비는 최근 회당 30억 원대까지 치솟았는데, 이는 10년 사이 적게는 서너 배, 많게는 열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드라마 공동 제작 증가 현상의 의미와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일부 글로벌 OTT 플랫폼을 제외하면 대부분 중소기업인 국내 드라마 제작사는 물론이고 대기업 계열 방송사·스튜디오조차 이렇게 커진 제작비를 단독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콘텐츠 사업이 유명 작가와 배우가 참여해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전형적인 고위험·고수익 사업인 만큼, 제작비 투자와 IP(지식재산권) 권리를 나눠 위험을 분산하는 공동제작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분석이다.
대표적으로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래몽래인과 SLL스튜디오가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해 전체 제작비를 50대50 비율로 투자한 사례로 꼽힌다.
"콘텐츠는 글로벌로, 리스크는 국내에만"…업계 51인이 꼽은 화두
이런 위험 분산의 흐름은 국제 공동제작으로 확장되고 있다.
씨네21이 진행한 '엔터테인먼트 산업 리더 51인이 말하는 2026년 트렌드' 설문에서는 국제 공동제작이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로 꼽혔다.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 콘텐츠의 제작비 상승 대비 내수시장에서의 수익 창출 한계를 타개할 "유일한 미래 대응책"으로 국외 진출을 지목했다.
이들은 "콘텐츠는 글로벌로 나아가는데, 제작 리스크는 여전히 국내에만 남아 있다"며 "리스크를 분산하는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고 짚었다.
"오징어 게임·케데헌 후광"…해외서 먼저 손 내미는 시기
흥미로운 대목은 이런 국제 공동제작 논의가 한국 측의 필요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지금이 "K콘텐츠의 파급력이 커지면서 각 나라가 우리나라와 일하고 싶어 하는 시기"라고 평가한다.
'오징어 게임'과 '케이팝 데몬 헌터스' 등의 흥행으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해외 투자사와 제작사로부터 다양한 접촉과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 업체들은 각 국가·지역에 적합한 공동제작 방식을 모색하고 있는데, 기존의 리메이크나 로케이션 활용 인센티브 지원 방식에 더해, IP 제공에 제작비 투자를 겸한 제안, 기획 단계부터 현지화를 염두에 둔 협업 등 새로운 모델이 시도되고 있다.
전 세계 시장을 무대로 작품을 피칭해야 하는 만큼, 보편적 정서에 지역별 강점을 덧입히는 이른바 '멀티 로컬 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정부도 국제방송영상마켓서 한·일 공동제작 논의 지원
'2026 국제방송영상마켓(BCWW)'에서는 국가별 연수회를 통해 콘텐츠 제작과 유통을 둘러싼 해외 협력을 모색하는데, 한국과 일본의 드라마 공동제작을 논의하는 프로그램을 비롯해 싱가포르, 중동 등과의 교류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이는 OTT 확산으로 콘텐츠 유통 경로는 늘었지만, 제작비 상승과 플랫폼 경쟁 심화로 제작·유통 환경 자체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점과 맞닿아 있다.
국내 제작사와 방송사들은 이런 마켓을 통해 해외 바이어와 만나 콘텐츠 수출 기회를 넓히고, 포맷 판매와 공동제작, 플랫폼 협력 등 다양한 사업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문체부, 2030년 방송영상 매출 30조 목표…"해외 공동제작도 직접 지원"
정부의 산업 육성 청사진도 국제 공동제작을 축으로 삼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10일 '제7차 방송영상산업 진흥 중장기계획(2026~2030)'을 발표했는데, 당초 2027년까지였던 제6차 계획을 2년 앞당겨 새로 수립했다.
글로벌 OTT의 영향력 확대와 제작비 상승, 토종 플랫폼의 수익성 악화 등 달라진 환경을 반영하기 위해서다.
문체부에 따르면 2024년 국내 방송영상산업 매출은 24조9944억 원으로 콘텐츠 산업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기록했고, 방송영상콘텐츠 수출액은 12억5718만 달러로 전년보다 20% 증가했다.
정부는 2030년까지 방송영상산업 매출을 30조 원으로, 수출액은 30억6000만 달러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2026년 OTT 해외진출 패키지 지원 예산 50억 원을 편성했는데, 여기에는 국내 제작사와 해외 방송사·스튜디오 간 공동제작 지원도 포함됐다.
해외비즈니스센터 25곳으로 확대…1조 원대 K-콘텐츠 펀드도
국제 진출을 뒷받침할 인프라 확충도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콘텐츠 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해외비즈니스센터'를 기존 15개소에서 25개소까지 확대할 계획이며, 국내 기업의 현지 법인과 입주 공간을 지원하는 '해외 콘텐츠 기업지원센터'를 일본 도쿄에 새롭게 설치할 예정이다.
중동에서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한국 문화를 상시 홍보하는 'KOREA360' 상설 홍보관을 개설했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는 한류 문화콘텐츠와 연관산업을 함께 선보이는 'K-박람회'도 개최된다.
아울러 콘텐츠 생산과 수출 활성화를 위해 1조 원대 규모의 'K-콘텐츠·미디어 전략 펀드'도 조성될 예정이다.
'더 많이'보다 '더 잘 활용'…글로벌 IP 비즈니스로 무게중심 이동
이런 국제 공동제작 확산은 국내 콘텐츠 산업 전반의 체질 개선과도 맞물려 있다.
업계 분석에 따르면 2026년 방송·미디어 산업에서는 콘텐츠를 많이 제작하는 것보다 '더 잘 활용'하는 경쟁이 핵심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데, 이는 원작이나 포맷 같은 IP를 확보하고 이를 다양한 형태로 재가공하는 원소스멀티유즈 전략과 국제 공동제작이 서로 맞물려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방송영상콘텐츠 IP 확보와 신산업 육성, 글로벌 유통망 확대, 산업 인프라 강화, 공정한 생태계 조성을 4대 전략으로 제시하며, 연 매출 100억 원 이상 제작사 비중을 현재 13.9%에서 27.8%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도 함께 세웠다.
실질적인 글로벌 흥행 공식을 만들까
국제 공동제작이 한국 콘텐츠가 특정 국가·문화권에 최적화된 '현지화 흥행 공식'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다음 단계의 관건이다.
오징어 게임과 케데헌이 증명한 글로벌 흥행 잠재력을 산업 구조로 정착시키려면 기획 단계부터 해외 파트너와의 협업을 설계하는 역량이 뒷받침돼야 한다.
정부의 재정 지원과 인프라 확충이 실제 국제 공동제작 건수 증가와 수출 성과로 이어질지, 그리고 이것이 2030년 매출 30조 원이라는 목표 달성으로 연결될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