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가 아니라 달라져서"…110세 장수인의 혈액 반전
김지수 기자2026.09.12

"특정 T세포가 절반 넘게 증식"…오사카대, 28명 혈액 정밀 분석
100세를 넘어 110세까지 사는 초장수인들의 비밀이 혈액 속 면역세포에서 발견됐다.
일본 오사카대 고스케 하시모토 연구팀은 고령자 28명의 혈액을 연령대별로 정밀 비교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연구의 결론은 초장수인들의 면역체계가 젊은 상태로 그대로 보존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몸속에서 발생하는 여러 위협에 맞서 완전히 다른 형태로 재편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람은 면역력이 젊게 유지된다'는 기존의 통념과는 결이 다른 발견으로 평가된다.
70대엔 4%뿐이던 공격형 세포, 110세 넘으면 17.6%까지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평소에는 그리 많지 않은 '공격형 면역세포'였다.
이 세포의 비율은 70~99세 연령대에서는 전체 T세포의 약 4%에 불과했지만, 100~109세에서는 9.6%, 110세 이상에서는 17.6%까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10세 이상 초장수인이 100세 미만 고령자보다 이 세포 비율이 4배 이상 높다는 뜻이다.
나이가 들수록 면역세포가 전반적으로 약화된다는 일반적 인식과 달리, 특정 세포 유형만큼은 오히려 나이가 많을수록 더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 셈이다.
"같은 표적 알아보는 세포가 대량 복제"…한 사람에게선 53.8%까지
이번 연구에서 더 중요한 건 이 세포의 숫자가 많았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110세까지 살아온 참가자들의 혈액에서는 동일한 표적을 인식하는 면역세포가 대량으로 복제된 흔적이 확인됐다.
가장 많이 증식한 하나의 세포 계통은 평균적으로 전체 CD4 세포독성 T세포의 33.3%를 차지했으며, 한 100세 이상 참가자에서는 단 하나의 세포 계통이 전체의 53.8%까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몸의 T세포는 저마다 다른 표적을 구별하는 일종의 '식별표'를 갖고 있는데, 특정 바이러스나 비정상 세포가 몸속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면 이를 알아보는 T세포가 집중적으로 복제되는 특성이 있다.
초장수인에게서 특정 T세포가 유독 많이 발견됐다는 것은, 이들이 오랜 세월 동안 몸속에서 나타난 어떤 특정 위협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이에 맞서 면역체계를 재편해왔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노화된 면역 아니라 특화된 면역"…기존 통념 뒤집는 발견
이번 연구가 갖는 의미는 노화와 면역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바꿔놓을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면역체계의 다양성이 떨어지고 전반적인 기능이 저하된다는 '면역노화(immunosenescence)' 개념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연구 결과는 초장수인의 경우 소수의 특정 면역세포 계통이 압도적으로 증식하며 고도로 특화된 방어 체계를 구축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오래 살아남은 사람들의 몸이 무작위로 노화한 것이 아니라,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면역체계를 '선택적으로 진화'시켰을 수 있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어떤 위협에 맞선 결과인지"가 다음 과제
다만 이번 연구는 초장수인의 몸에서 어떤 특정 위협에 대응해 이런 면역세포 증식이 일어났는지까지는 명확히 규명하지 못했다.
특정 바이러스에 대한 반복적 노출인지, 만성적인 비정상 세포 감시 활동의 결과인지, 혹은 또 다른 생물학적 요인이 작용했는지는 추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연구팀이 분석한 대상이 28명이라는 비교적 소규모 표본이었다는 점도 향후 더 많은 초장수인을 대상으로 한 후속 검증이 필요한 이유로 꼽힌다.
"장수 비결 그대로 따라 할 순 없어"…전문가들 신중론
전문가들은 이번 발견이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하지만, 이를 곧바로 '장수 비법'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지적한다.
특정 면역세포의 증식은 개인의 생애 전반에 걸친 감염 이력과 유전적 특성,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이런 면역세포 증식을 유도하는 것이 실제로 수명 연장에 도움이 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오히려 특정 T세포 계통의 과도한 증식이 때로는 만성 염증이나 자가면역 반응과 연관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 현상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이분법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 발견을 실제 노화 개입 전략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가 초장수인의 면역체계가 어떻게 다르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 만큼, 앞으로 이런 면역세포 특성을 조기에 발견하거나, 나아가 이를 모사한 면역 강화 전략을 개발할 수 있을지가 다음 연구 단계의 과제라고 본다.
다만 노화와 면역의 관계는 여전히 복잡하고 개인차가 큰 영역인 만큼, 이번 발견이 실제 인간 수명 연장 개입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추가 검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건강·과학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건강법이나 치료를 권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