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9차 연장에도 딜레마…"석유 최고가격제 이대로 괜찮나"

김지수 기자2026.09.14
9차 연장에도 딜레마…"석유 최고가격제 이대로 괜찮나"
3월 13일 첫 시행…1997년 유가자유화 이후 29년 만의 통제 정부가 국제유가 폭등에 대응해 도입한 '석유 최고가격제'가 벌써 9차 연장을 맞으며 제도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 제도는 지난 3월 13일 처음 시행됐는데, 이는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약 29년 만에 처음으로 정부가 가격 통제에 나선 조치다.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에 근거해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도매가격(공급가)에 상한선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소비자가 실제 주유소에서 지불하는 판매가에 직접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최초 기준가격은 휘발유 리터(ℓ)당 1724원, 경유 1713원, 등유 1320원으로 설정됐으며, 3월 27일 2차 고시에서는 휘발유 1934원, 경유 1923원으로 다소 높아졌다. 이후 국제유가 흐름에 따라 4주 간격으로 계속 조정돼왔다. 도입 배경은 미·이란 충돌…한때 리터당 100원 이상 인하 효과 이번 제도 도입의 직접적 계기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무력 충돌이었다. "기름값이 리터당 2000원을 찍겠다"는 우려가 커지던 상황에서, 정부는 30년 만에 봉인을 풀고 가격 상한선을 도입했다. 제도 도입 이후 국제유가가 하락 국면에 접어들자, 정부는 지난 6월 26일 처음으로 최고가격을 인하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당시 최고가격을 1700원대까지 낮춰 기름값 인하의 걸림돌을 치우겠다는 취지였는데, 이는 전쟁 국면에서 국제유가가 폭등할 때는 최고가격제가 국내 기름값 폭등의 단기적 충격을 막는 데 톡톡히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와 맞물린 조치였다. "가격을 내리는 장치 아냐, 상승 속도만 제한"…소비자 혼란도 다만 제도 시행 초기부터 이름 자체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지적이 있었다. '최고가격제'라는 말을 들으면 가격을 최대한 낮춘다는 뜻으로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정유사 공급가에 상한선을 설정해 상승 속도를 제한하는 장치에 가깝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고가격제를 시행했다더니 왜 기름값이 오히려 올랐지?"라는 소비자들의 혼란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교통에너지환경세 같은 고정 세금이 국제유가와 무관하게 리터당 일정액 부과되는 구조여서, 국제유가가 내려가는 만큼 실제 기름값이 그대로 내려가지 않는 한계도 지적됐다. 9차 연장에도 '동결'…"물가냐 재정이냐" 딜레마 최근 국면에서는 제도 자체가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지난 8월 22일 발표된 9차 석유 최고가격제는 또다시 동결됐는데, 정유사 공급가 상한은 이전 7~8차와 마찬가지로 휘발유 1784원, 경유 1773원, 등유 1380원으로 4주간 적용됐다. 문제는 이 제도를 계속 이어가자니 정유사 손실 보전액이 커져 추가 재정 부담이 발생하고, 반대로 제도를 종료하자니 그동안 눌러왔던 유가 상승분이 한꺼번에 국내 기름값에 반영돼 물가가 다시 들썩일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물가 안정과 재정 부담이라는 두 마리 토끼 사이에서 계속 저울질하는 형국이다. 정유사 손실 보전에 최대 4조2000억 원…국감서 효과 검증 요구 이런 재정 부담의 구체적 규모도 국정감사에서 도마에 올랐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발간한 '2026 국정감사 이슈 분석'을 통해, 정부가 정유사 공급가격을 제한하는 대신 손실을 재정으로 보전하는 이번 구조가 최대 4조2000억 원에 이를 수 있다고 짚었다. 입법조사처는 이 제도가 실제 소비자가격 안정으로까지 이어졌는지, 그리고 이만큼의 재정을 투입한 것에 걸맞은 효과를 냈는지를 정부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소비자 편익과 재정 부담을 함께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세금 부담 논란도…"싸다고 더 쓰면 결국 세금으로" 최고가격제 도입 한 달여 만에 시민들의 기름값 부담은 크게 줄었지만, 정작 기름값이 저렴해지면서 기름을 아껴 쓰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유가정보시스템에 공개된 23개 국가 중 한국의 경유 값은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이었는데, 이는 소비를 억제하는 가격 신호 기능이 약화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비가 줄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유류세 등 세금 부담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호르무즈 해협 긴장 지속…6개월 넘게 이어지는 위기 이런 딜레마의 원인은 여전히 진행 중인 중동 정세 불안이다. 지난 2월 말 시작된 호르무즈 해협 위기는 6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으며, 미국의 이란 공습과 해상 봉쇄, 호위 작전 등이 반복되면서 전 세계적인 연료 위기로 번진 상태다. 실제로 최근 미국과 이란 간 군사 충돌이 재점화되며 브렌트유 가격이 100달러를 다시 넘어서는 등, 유가 변동성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런 대외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한, 최고가격제를 둘러싼 정부의 딜레마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출구 전략을 언제, 어떻게 설계할지 전문가들은 이번 최고가격제가 단기적인 물가 충격 완화에는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하면서도, 언제까지 정유사 손실을 재정으로 메우며 가격을 인위적으로 억제할 수 있을지가 다음 관건이라고 짚는다. 제도를 성급히 종료하면 그동안 눌러온 유가 상승분이 한꺼번에 반영돼 물가에 충격을 줄 수 있고, 반대로 장기화하면 재정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는 만큼, 국제유가 흐름을 봐가며 단계적인 출구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이란을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가 완화되지 않는 한, 정부의 '물가냐 재정이냐'라는 딜레마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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