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00개→6000개…빵지순례 밀어낸 '떡지순례' 열풍
김지수 기자2026.09.22

더현대 서울 앞 100팀 대기…추석 연휴 앞두고 절정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의 한정선 매장 앞은 개점 시간인 오전 10시 30분부터 수십 명의 손님으로 붐볐다.
대기 등록을 마친 손님들은 매장 주변을 빙 둘러싸고 차례를 기다렸고, 직원들은 "통로 막지 마세요"라는 안내를 반복해야 할 정도였다.
1개당 5000원을 웃도는 가격에도 발길은 끊이지 않았는데, 일산에서 온 한 고등학생은 개점 직후 대기 등록을 했지만 앞에 100팀이 있어 40분 넘게 기다리는 중이라고 전했다.
명절이나 잔칫날에나 찾던 전통 떡이, 이제는 백화점 앞에 줄을 세우는 트렌디한 디저트로 완전히 탈바꿈한 셈이다.
부산서 시작된 '피자설기'가 두 달 만에 전국구로
이번 열풍의 진원지는 부산 영도다리떡방이다.
피자 토핑을 얹은 백설기 '피자설기'가 SNS를 타고 입소문 나면서, 개점 전부터 대기 줄이 형성되고 주말에는 오전 중 물량이 소진되는 인기를 끌었다.
이 유행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번졌다.
인천 부평종합시장의 한 떡집은 피자설기 출시 2달여 만에 하루 판매량이 200개에서 최대 6000개로 약 30배 급증했다.
업계에서는 이런 확산 배경으로 개성주악과 버터떡, '두바이쫀득쿠키(두쫀쿠)'를 거치며 15일 안팎으로 짧아진 최근 디저트 유행 주기를 꼽는다.
2025년 하반기 두쫀쿠 열풍으로 시작된 흐름이, 2026년 초 유튜브 브이로그를 통한 광주 창억떡 호박인절미 재조명, 상반기 압구정 흑임자 인절미·서울 버터떡 화제를 거쳐 지금의 '떡지순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블로그 언급량 8개월 새 2.9배…'디저트' 연관 게시물도 40%↑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썸트렌드 집계에 따르면 올해 1~8월 온라인에서 떡을 '디저트'라는 단어와 함께 언급한 게시물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넘게 늘었다.
블로그에서 '떡지순례'가 언급된 글은 올해 1월 87건에서 8월 254건으로 약 2.9배 증가한 반면, '주문'이나 '답례떡'처럼 기존 소비 방식을 나타내는 단어는 같은 기간 27%가량 줄었다.
이는 떡이 일부러 찾아가서 줄 서 먹는 '순례형 디저트'로 소비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백화점도 지역 떡집 모시기 경쟁…롯데백화점 잠실점 5곳 팝업
이런 흐름에 유통 채널도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잠실점에서 열린 '떡지순례' 팝업에는 부산 영도다리떡방과 전북 익산 농협찹쌀떡, 전남 여수 봄날엔 등 지역 업체 5곳이 참여했다.
더현대 서울 역시 지역 떡집을 유치해 개점 시간부터 긴 대기줄을 만들어내고 있다.
편의점에서는 찹쌀떡과 모찌를 활용한 디저트가 10만 개 이상 팔리고 있으며, 온라인몰에서는 관련 거래액이 2배로 뛰었다.
전국의 유명 떡집을 찾아다니는 문화가 하나의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백화점들까지 나서 지역 떡집을 앞다퉈 모셔오는 모양새다.
피자설기·과일찹쌀떡·호박인절미…"떡의 소비 영역이 일상 디저트로"
피자설기와 과일·크림 찹쌀떡, 호박·카스테라 인절미 같은 퓨전 떡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떡의 소비 영역이 명절 음식에서 일상 디저트로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대전의 '시루애'처럼 구매 수량 제한 없이 예약·포장 위주로 운영해 가족 단위 소비를 끌어들이는 곳도 있고, 서울 안에서는 압구정·성수·연남동·강남 일대가 떡지순례 코스로 자주 꼽히는 등 지역별 변주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여행 일정에 끼워 넣기 좋다는 점에서 소도시와 전통시장으로도 순례 코스가 확산되는 추세다.
쌀가공식품 수출도 9.6%↑…"K푸드 해외 판매 기반 확대 지표"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쌀가공식품 수출액은 7089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9.6% 증가했다.
쌀가공식품에는 떡뿐 아니라 즉석밥과 떡볶이류 등 다양한 품목이 포함돼 있어 이를 떡 수출 증가와 곧바로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쌀을 기반으로 한 K푸드의 해외 판매 기반이 확대되고 있다는 지표로는 읽힌다.
"동네 떡집은 못 느껴"…양극화 우려도
다만 이런 열기가 떡집 업계 전체의 훈풍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화점 팝업이나 SNS 유명 떡집에는 수십 명씩 줄을 서지만, 정작 동네 떡집이나 전통시장까지는 열기가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작구에서 떡집을 운영하는 한 50대 업주는 "요즘엔 추석 대목 그런 거 없다"며 "기존 손님들 유지되는 정도"라고 말했다.
유행을 좇아 블루베리·초코·오레오·콘치즈 등을 활용한 설기 14가지를 선보인 한 업주는 한때 유행했던 피자설기를 개업 초에 만들어봤지만 당시엔 지금 같은 큰 유행이 아니어서 현재는 팔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는 SNS발 유행이 특정 스타 떡집과 백화점 팝업에는 집중되는 반면, 동네 상권에는 온기가 잘 전달되지 않는 양극화 현상을 보여준다.
15일짜리 유행을 넘어선 지속가능한 소비로 안착할지
두쫀쿠에서 버터떡을 거쳐 떡지순례로 이어진 최근 디저트 유행 주기가 평균 15일 안팎으로 매우 짧다.
경기 광명의 한 떡집이 밀려드는 주문에 추석 연휴 전 예약 주문 자체를 중단할 정도로 수요가 몰리는 가운데, 이런 인기가 동네 떡집과 전통시장 상권 전반의 활력으로까지 확산될 수 있을지가 이번 트렌드의 다음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