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호주 담뱃세로 막겠다던 흡연, 암시장만 키웠다

한지훈 기자2026.10.01
호주 담뱃세로 막겠다던 흡연, 암시장만 키웠다
10년 새 3배 뛴 담뱃값…한 갑 6만 원 '세계 최고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금연 정책을 펴온 호주가 자신이 만든 정책의 역풍을 맞고 있다. 29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호주에서 합법 담배 가격은 2016년 말 이후 10년간 약 3배로 올랐다. 현재 담배 한 갑 가격은 약 60호주달러(약 5만7000원)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준이며, 이 가운데 70% 이상이 세금이다. 호주는 1970년대부터 담배 판매에 강력한 규제를 적용해온 '금연 정책 선도국'으로, 2013년부터 2020년까지는 담배 가격을 매년 최소 12%씩 올렸다. 현재 담배에 부과되는 소비세 비중은 약 68%로, 주요 선진국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정품의 5분의 1 가격…암시장이 전체 시장의 55% 장악 문제는 이렇게 치솟은 가격 격차가 거대한 불법 시장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불법 담배는 합법 제품의 약 5분의 1 가격에 판매되는데, 가게에서 "수입 담배가 있느냐"고 물으면 정가의 절반도 안 되는 15호주달러(약 1만5000원)에 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 담배 규제당국은 지난해 불법 담배가 전체 담배 시장의 약 55%를 차지한 것으로 추산했다. 불법 담배와 전자담배에 대한 연간 지출 규모는 약 85억 호주달러(약 8조246억 원)에 달하는데, 이는 대마초와 코카인, 엑스터시, 헤로인 시장을 합친 것의 2배 수준이다. 제임스 마틴 디킨대 범죄학 교수는 "시장 점유율만 놓고 보면 암시장이 사실상 '빅 토바코(거대 담배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이렇게 거대한 암시장이 이토록 빠르게 형성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발소·과일가게까지 침투…방화·강도 등 폭력범죄 '3명 사망' 불법 담배의 유통망은 더 이상 뒷골목에 국한되지 않는다. 온라인과 주차장 임시 판매점을 넘어 이발소와 과일가게 등 일상적인 상점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이를 둘러싼 조직범죄 간 세력 다툼도 격화되면서 폭력 사건이 잇따르고 있는데, 멜버른과 시드니 등에서는 방화 공격이 빈발했고 지난해에는 관련 범죄조직의 공격으로 27세 여성이 숨졌다. 호주 상원은 담배 암시장과 관련한 폭력으로 지금까지 3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호주 편의점 업계 단체 대표인 테오 푸카레는 "합법 담배를 훔쳐 불법으로 되파는 갈취와 강도 사건도 벌어지고 있다"며 "상황이 통제 불능"이라고 말했다. "건강·세수·범죄 억제 모두 실패"…경제학자 혹평 담뱃세 인상 추이를 추적해온 경제학자 크리스 리처드슨은 현재 상황을 "완전한 실패"라고 평가하며, 국민 건강 개선과 세수 확보, 조직범죄 척결이라는 세 가지 목표 모두에서 "어리석은 삼중고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내가 본 공공정책 가운데 가장 어리석은 정책"이라고까지 꼬집었다. 실제로 흡연율을 낮추겠다는 애초의 목표도 온전히 달성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호주통계청이 하수에서 검출된 니코틴양을 분석한 결과, 호주의 니코틴 소비량은 2017년부터 2025년까지 약 40%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는데, 이는 불법 담배 소비 증가가 주도한 결과다. 즉 세금을 올려 흡연을 줄이려던 정책이 오히려 저렴한 암시장 제품으로의 소비 이동만 부추긴 셈이다. 상원 "한계점 도달" 세율 인하 권고…정부는 "고율 과세 유지" 고수 이런 역풍 속에 호주 상원은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불법 담배 시장이 이미 '한계점'에 이르렀다며 추가 세금 인상을 즉시 중단하고 세율을 크게 낮출 것을 권고했다. 야당인 자유당과 원네이션도 합법 담배 가격을 낮추기 위한 세금 인하를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정부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마크 버틀러 호주 보건부 장관은 ABC방송 인터뷰에서 "공중보건뿐 아니라 심각한 조직범죄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이 분야에서 근거 없는 추측에는 관심이 없다"며 고율 과세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정부와 야당, 상원 사이의 입장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모양새다. 한국은 정반대 상황…11년째 4500원 동결, OECD 38개국 중 35위 한국의 담뱃값은 2015년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인상된 이후 11년째 그대로 동결돼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OECD 38개국의 평균 담배 가격은 9869원인데, 한국은 38개국 중 35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이 기간 국내 소비자물가는 20% 이상 올랐지만 담뱃값만 제자리인 셈이다. 정부는 지난 3월 발표한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에서 담배 가격정책 검토를 중장기 방향으로 제시했지만, 담뱃값이 1만 원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자 보건복지부는 사흘 뒤 "현재 담배 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즉각 선을 그었다. 정부가 인상에 신중한 배경에는 물가 부담이 꼽히는데, 2015년 담뱃값을 80% 올렸을 당시 그해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58%포인트 끌어올려진 전례가 있다. 담배가 구매 빈도가 높고 소비자물가지수에도 포함되는 품목인 만큼, 가격을 한꺼번에 올릴 경우 물가 지표에 즉각 반영될 수 있다는 점이 정부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고율 과세의 적정선을 어디서 찾을지" 호주 사례는 담뱃세 정책에서 '얼마나 올리느냐'보다 '어디까지 올려야 역효과가 나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훨씬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세금을 통한 가격 통제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소비자들이 금연 대신 암시장으로 옮겨가며 세수 감소와 조직범죄 확산이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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