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800원대는 끝물?"…엔저 막바지 베팅에 뭉칫돈 몰린다

정하윤 기자2026.09.09
"800원대는 끝물?"…엔저 막바지 베팅에 뭉칫돈 몰린다
4대 은행 엔화예금 1조1091억 엔…한 달 새 1006억 엔 급증 원·엔 환율이 15년 만에 최저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지금이 막차'라는 인식 속에 엔화를 사들이려는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은 지난 9일 기준 1조1091억 엔으로, 전월 말(1조85억 엔) 대비 1006억 엔(9.97%) 늘었다. 하루 평균 100억 엔 넘는 자금이 새로 유입된 셈이다. 4대 은행 엔화예금은 올해 들어 4월까지 감소세를 보이다가 5월부터 꾸준히 늘어 지난달 1조 엔을 돌파했다. 이는 엔화 가치가 크게 떨어진 지금이야말로 저점 매수의 적기라는 인식이 투자자들 사이에 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원·엔 환율 866원…2024년 7월 이후 최저 실제 환율 흐름을 보면 이런 투자 심리가 이해될 만하다. 최근 100엔당 원화 환율은 866.47원으로, 지난달 1일(955.63원)보다 89원가량 떨어지며 2024년 7월 11일(852.72원) 이후 2년 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앞서 지난해 11월에는 원·엔 환율이 15년 9개월 만에 처음으로 860원대에 진입하며 시장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런 흐름이 반복되면서, 엔화 가치가 낮을 때 분할 매수하려는 투자 수요가 엔화예금 잔액 급증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6월 고점 대비 12% 하락"…정작 최근 수익률은 부진 다만 최근 실제 투자 성과는 신통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엔화 가치는 지난해부터 꾸준히 하락하며 엔테크(엔화+재테크)족들의 투자 성과 역시 부진을 이어가고 있는데, 지난 6월 고점 대비 12% 하락하며 환차손 영향을 크게 받았다. 대표적인 엔 투자 상장지수펀드(ETF)인 TIGER 일본엔선물 ETF는 최근 한 달간 5.6% 하락했다. 미국 장기채에 투자하며 엔화에 연동하는 상품들의 부진도 두드러졌는데, RISE 미국30년국채엔화노출(합성H)은 최근 한 달간 5.31%, ACE 미국30년국채엔화노출액티브(H)는 5.18% 각각 떨어졌다. 같은 기간 엔화 노출이 없는 일반 미국채30년 ETF들이 4%대 하락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엔화 노출 상품의 낙폭이 상대적으로 더 컸던 셈이다. "154엔대까지 내려온 달러·엔"…7개월 만의 엔화 강세 조짐도 흥미로운 점은 최근 국제 외환시장에서 엔화가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 시장에서 달러·엔 환율은 154엔대까지 내려오며 엔화 가치가 상승하는 흐름을 보였는데, 이는 달러 대비 약 7개월 만의 강세 수준이다. 일본은행(BOJ)의 추가 긴축 기대와 일본 투자자들의 자금 환류 가능성, 엔 캐리트레이드 청산 움직임 등이 엔화 강세 재료로 거론된다. 특히 달러당 155엔 아래가 유지될 경우, 그동안 이어져 온 강한 엔저 흐름 자체가 약해졌다는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다만 미국 물가가 높게 나오고 금리 인상 전망이 다시 강해지면 달러가 반등하며 엔화 상승세가 제한될 가능성도 함께 언급된다. BOJ 긴축 시그널…"슈퍼 엔저 시대, 저물 준비" 이런 반등 조짐의 배경에는 일본은행의 통화정책 전환 가능성이 자리 잡고 있다. 그동안 초저금리를 유지하며 엔저를 유도했던 일본은행이 물가 상승과 임금 인상에 대응하기 위해 추가적인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2026년 일본 경제의 가장 큰 화두를 '금리 정상화'로 꼽으며, 800원대 엔화가 이제 '전설 속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이런 관측이 맞다면, 지금이 엔화를 싸게 매수할 수 있는 사실상 '막차 골든타임'이라는 인식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확산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긴 호흡·분할 매수가 안전"…전문가들 신중론 다만 전문가들은 엔테크에 나서더라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엔테크는 환율을 중심으로 하는 재테크인 만큼 시장에 불확실한 변수가 많아, 단기적으로 환차익만을 노리거나 목돈을 한 번에 집중 투자하는 방식은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긴 호흡으로 다양한 시점에 나눠 투자하는 분할 매수 전략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방법으로 꼽힌다. 실제로 하루 변동폭이 커진 최근 같은 시기에는 전액을 한 번에 환전하기보다 일정 금액씩 나누는 분할 환전이 환율 변동 위험을 낮추는 데 유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매수·매도 양쪽에 환전 스프레드(수수료)가 존재하는 만큼, 환율이 다소 올라도 비용을 제하면 실제 수익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조건 안 보고 뛰어들었다가 낭패"…엔화예금 상품 꼼꼼히 따져야 실제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엔테크 상품의 세부 조건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손실을 본 사례도 회자되고 있다. 엔화를 사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정작 자신이 가입한 상품의 만기나 금리 조건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통장 잔고를 보고 당황했다는 경험담이 온라인상에서 공유되기도 했다. 엔화예금은 일반 정기예금처럼 이자가 붙는 데다 환차익이 100% 비과세라는 장점이 있지만, 가입 시 환전 수수료가 발생하는 만큼 이를 꼼꼼히 계산해야 한다. BOJ 긴축 속도와 미국 금리 경로의 조합 전문가들은 엔화 향방이 일본은행의 긴축 속도와 미국의 금리 정책 경로가 어떻게 맞물리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BOJ가 예상보다 빠르게 금리를 정상화하고 미국이 금리 인하로 전환할 경우 엔화 강세가 본격화될 수 있지만, 반대로 미국 물가가 다시 오르며 긴축 기조가 이어질 경우 엔저 흐름이 예상보다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 엔테크 열풍이 '막차'가 될지, 아니면 이미 지나간 저점을 놓친 뒤늦은 베팅이 될지는 앞으로 몇 달간의 한·미·일 통화정책 향방에 달려 있다. ※ 이 글은 투자 참고용 정보이며, 특정 자산에 대한 투자를 권유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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