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에 사라진 '1조 톤 괴물'…세계 최대 빙산의 최후
김지수 기자2026.09.10

서울 7배 크기서 68.6㎢ 미만으로…국제 기준 미달로 '공식 제적'
한때 무게 1조 톤, 면적이 서울의 약 7배에 달했던 세계 최대 빙산 'A23a'가 40년 만에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중국 기상당국에 따르면 A23a는 지난 4월 3일 대규모 붕괴를 겪으며 최대 잔해 면적이 35.2㎢까지 줄어들었다.
이는 국제적으로 빙산에 번호를 부여하는 기준인 약 68.6㎢(20평방해리)와 장축 18.5㎞(10해리)를 크게 밑도는 수준으로, 이로써 A23a는 국제 관측 목록에서 공식적으로 '제적'됐다.
1986년 남극에서 떨어져 나온 이후 세계 최대 빙산으로 군림해온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공식적인 '빙산' 지위마저 잃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셈이다.
1986년 분리 후 30년 넘게 '거의 정지'…2020년부터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
A23a의 일생은 반전의 연속이었다.
1986년 남극 필히너 빙붕에서 떨어져 나왔을 당시 면적은 약 4170㎢, 두께는 약 400m, 무게는 1조 톤에 달했다.
분리 직후 웨델해 해저에 걸려 좌초되면서 30년 넘게 거의 움직이지 않는 '휴면 상태'로 지냈는데, 2020년 무렵부터 얼음층이 녹으며 서서히 해저 속박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2022년 말부터는 본격적으로 북쪽을 향해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했고, 2023년 초에는 면적 4035㎢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당시 세계 최대 빙산으로 공식 등재되기도 했다.
'테일러 기둥'에 갇혀 수개월 맴돌다…2024년 남극환류 타고 탈출
2024년에는 '테일러 기둥'으로 불리는 해양 소용돌이에 붙잡혀 수개월간 같은 자리를 맴돌기도 했는데, 이후 이곳을 벗어나 남극을 감싸고 도는 남극환류(남극순환해류)에 올라타면서 북상을 시작했다.
남대서양을 이동하는 과정에서 균열과 붕괴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지난해 6월부터 9월 사이에는 여러 차례 대규모 균열이 발생하며 면적이 연초 3536㎢에서 약 1400㎢까지 줄었고, 올해 1월에는 다시 붕괴를 겪으며 주 몸체 면적이 503㎢로 급감했다.
'남빙산 표류의 무덤'서 최후…2월부터 4월까지 연쇄 붕괴
2월 25일 310㎢였던 면적은 며칠 안정을 유지하다 다시 붕괴해 3월 3일 180㎢까지 줄었다.
이후 방향을 동쪽으로 틀어 표류하던 A23a는 남위 48.5도, 서경 30.5도 부근에서 최후의 붕괴를 맞았는데, 3월 27일 169㎢였던 면적이 4월 3일 35.2㎢로 급감하며 사실상 '소멸'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도 지난 1월 8일 위성 영상을 통해 A23a 표면이 파란 융빙수로 뒤덮이고 균열이 발생한 모습을 포착하며, 수일에서 수주 안에 완전히 붕괴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이곳은 다수의 대형 빙산이 표류하다 최후를 맞는 이른바 '빙산의 무덤'으로 불리는 해역이기도 하다.
붕괴 자체는 자연현상…"기후변화 직접 탓하기는 일러"
전문가들은 A23a의 소멸을 곧바로 기후변화의 직접적 결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빙붕에서 떨어져 나온 빙산이 따뜻한 해역으로 흘러가 녹는 것은 자연적인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NASA에 따르면 A23a 주변 해수 온도는 약 3도로, 이는 남극환류와 남대양의 자연적인 열 분포를 반영하는 것이지, 지구 표면 평균기온 상승이 A23a의 소멸을 직접 유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다만 과학계는 지구온난화가 계속될수록 빙붕 붕괴와 대형 빙산 발생, 해양 생태계 변화가 더 빈번해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1조 톤 담수 방류…"해양 순환·펭귄 먹이활동에도 영향"
A23a의 붕괴와 융해 과정은 해양 생태계에도 흔적을 남겼다.
붕괴하며 내부에 오랫동안 갇혀 있던 영양물질이 바다로 방출되자, 지난해 말부터 빙산 파편 해역 주변 바다가 '녹색'을 띠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는 해양 조류(플랑크톤) 대증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기존 생태 균형을 깨뜨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동시에 거대한 빙산 파편들이 펭귄과 물범 등 생물들의 먹이활동 경로를 가로막아 먹이 확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A23a가 융해되는 과정에서 약 1조 톤의 담수가 남대서양으로 방출됐는데, 이는 국지적인 염분 농도와 해류 순환을 뚜렷하게 교란시켜 열염순환(온도와 염분 차이로 발생하는 심층 해류 시스템) 같은 주요 해류 체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항행 안전 측면에서도 붕괴 과정에서 생겨난 수많은 빙산 파편들이 그 자체로 대형 빙산 수준의 크기를 가지고 있어, 인근 항로에 심각한 위협이 되며 항운과 어업 활동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세계 곳곳 '빙하 장례식'…산악 빙하 감소세는 더 뚜렷
A23a의 소멸을 계기로 전 세계 곳곳에서는 사라지거나 소멸을 앞둔 빙하를 추모하는 이른바 '빙하 장례식'이 이어지고 있다.
산악 빙하의 감소세는 더 뚜렷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세계빙하감시서비스(WGMS)가 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빙하는 2025 수문연도에만 4080억 톤 이상의 얼음을 잃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빙산의 자연적 소멸과는 별개로, 전 세계 산악 빙하가 기후변화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로 꼽힌다.
대형 빙산 붕괴의 빈도와 강도가 앞으로 얼마나 잦아질지
전문가들은 A23a 한 개체의 소멸 자체가 기후변화의 직접적 증거는 아니지만, 향후 이런 대형 빙산의 발생과 붕괴가 얼마나 자주, 얼마나 큰 규모로 반복되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대형 빙산의 붕괴는 해양 생태계와 해류 순환, 항행 안전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위성 관측을 통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국제적인 데이터 공유가 향후 기후변화 대응 정책 수립에도 중요한 근거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