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게시물 하나씩 지우기는 그만"…'한국형 온라인안전법'

최윤서 기자2026.09.10
"게시물 하나씩 지우기는 그만"…'한국형 온라인안전법'
이주희 의원·한국언론법학회 세미나…"온라인 안전기준선을 어디에 그을까" 온라인 공간의 이용자 보호를 위한 별도 법제 마련이 본격적인 논의 단계에 들어섰다. 지난 4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이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국언론법학회가 공동 주최한 '온라인 공간의 안전기준선-한국형 온라인안전법 입법 방향과 쟁점' 정책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세미나는 현행 정보통신망법에서 이용자 보호와 콘텐츠 안전 관련 규정을 떼어내 별도의 '온라인안전법'을 만들고, 국가기관의 개별 콘텐츠 심의 중심 구조를 플랫폼의 책임과 시스템 관리 중심으로 바꾸자는 구상을 놓고 논의를 벌였다. 1986년 전산망법이 뿌리…"새 위험 생길 때마다 조항만 덧붙여와" 세미나는 최진응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의 발표로 시작됐다. 그는 정보통신망법의 모태법이 애초 이용자 보호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법이 아니라고 짚었다. 1986년 제정된 '전산망 보급 확장 및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은 공공기관과 은행 컴퓨터를 연결하는 전산망 인프라 구축 지원이 목적이었고, 이후 PC통신과 초고속인터넷이 보급되면서 개인정보 보호, 청소년 보호, 임시조치, 불법정보 규제 등이 그때그때 조항으로 추가돼 왔다는 것이다. 최 조사관은 "지금 체계는 삭제 중심"이라며 "SNS 중독은 콘텐츠 자체가 불법이라서가 아니라 계속 노출되고 계속 보게 되는 것이 문제인데, 과거부터 이어진 정부 중심의 내용 규제 체계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책임 주체는 국가에서 플랫폼으로…"신고→처리→이의제기→분쟁조정" 최 조사관이 제시한 핵심 골자는 불법·유해정보 대응의 1차 책임을 국가에서 플랫폼으로 옮기는 것이다. 다만 유럽연합(EU) 디지털서비스법(DSA)이나 영국·호주의 온라인안전법 중 어느 한 모델을 그대로 가져오기보다, 한국의 현행 제도와 결합한 혼합형 모델을 제안했다. 구체적으로는 플랫폼이 신고된 정보를 먼저 판단·조치하고, 이용자는 그 처리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으며, 이마저도 불복하면 분쟁조정기관을 거치는 구조다. 다만 디지털 성범죄물처럼 불법성이 명백하고 피해가 중대·긴급한 일부 정보에는 국가의 삭제·접속 차단 권한을 남겨둔다는 방침이다. 플랫폼 규모와 기능에 따라 의무 수준도 차등화되는데, 대형 사업자에게는 사전적인 위험 평가와 위험 완화 의무까지 추가로 부과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허위조작정보 판단, 플랫폼에 맡겨도 되나"…사적 검열 우려 쏟아져 종합토론에서는 이런 구상의 쟁점이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김가희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연구소 연구원은 불법정보와 유해정보를 구분하는 기준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짚으며, 허위조작정보는 허위 여부뿐 아니라 유포 의도와 피해 여부까지 복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영역이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플랫폼이 개별 정보의 '진실 판정자'가 되기보다, 허위 계정·봇의 조직적 확산이나 사칭형 딥페이크, 알고리즘을 통한 비정상적 증폭처럼 플랫폼이 통제 가능한 유통구조에 책임을 지우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현귀 한국해양대 해사법학부 교수는 플랫폼 중심 책임체계 전환 방향에는 동의하면서도, 국가의 판단권을 사기업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본권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특히 높은 과징금 위험을 부담하는 플랫폼이 논쟁적이거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콘텐츠를 일단 차단하는 '사적 검열' 가능성을 우려했다. "검색·SNS·커뮤니티, 같은 잣대로 규제 못 해"…해외 플랫폼 집행력도 문제 상윤모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플랫폼마다 기능과 규모가 다른 만큼 법 적용 대상 범위를 명확히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검색과 SNS, 호스팅, 온라인 커뮤니티를 동일한 방식으로 규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유럽연합과 영국, 호주 등 주요국이 최근 이용자 보호에 초점을 맞춘 플랫폼 규제를 잇따라 도입하고 있는데, 공통점은 아동·청소년 보호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정철운 미디어오늘 논설위원은 불법정보 유통 방지 책임을 민간으로 전환하는 것이 피해 구제의 신속성 측면에서는 효과적일 수 있다면서도, 과거 포털의 '임시조치'처럼 권리침해 여부가 불분명한 정보까지 먼저 차단되는 문제가 재현될 가능성과 인스타그램·페이스북·X 같은 해외 플랫폼에 대한 실질적인 집행력 확보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또 온라인안전법이 규율하는 불법정보에 언론보도까지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만큼, 입법 단계에서 이를 명확히 해 현장의 혼란을 예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심위 "통신심의 완전 폐지는 신중해야"…심의·분쟁조정 병행 제안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 측에서는 통신심의를 아예 없애는 데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고현철 방심위 이용자보호국장은 사업자의 자율 책임성 강화와 분쟁조정 기능 확대 방향에는 동의하면서도, 불법·유해정보 판단·조치 권한을 전적으로 민간에 넘길 경우 과잉규제와 규제 공백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해외에서 운영되는 디지털 성범죄·도박 사이트처럼 사업자의 자율규제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영역이 존재하는 만큼, 통신심의와 분쟁조정을 대체 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 관계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사적 권리침해는 분쟁조정을 우선하되, 디지털 성범죄·마약·도박처럼 불법성이 명백하고 피해가 중대한 사안은 신속한 심의로 확산을 차단하는 별도 트랙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판단권과 책임을 국가·플랫폼·이용자 사이에 어떻게 나눌지 이날 논쟁은 온라인 규제 도입 자체에 대한 찬반보다, 판단권과 책임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집중됐다. 국가가 개별 게시물을 직접 판단하는 구조를 줄이는 것은 표현의 자유 침해 가능성을 낮추려는 취지지만, 그만큼 플랫폼에 판단권이 몰리면 사적 검열과 과잉 삭제 우려가 커질 수 있다는 반론이 팽팽히 맞섰다. 국내 사업자에게만 규제가 실질적으로 작동할 경우 해외 플랫폼과의 형평성 문제도 남는 과제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한국형 온라인안전법의 핵심이 플랫폼은 어디까지 판단하고 이용자는 그 결정에 어떻게 이의를 제기하며 국가는 언제 다시 개입해야 하는지 그 경계를 정하는 데 있다고 보고 있다. 향후 추진될 입법 과정에서 이런 '온라인 안전기준선'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제시될지가 논쟁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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