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마 대신"…혼잡도 '넛지'로 풀어보는 오버투어리즘
정희윤 기자2026.09.11

관광객 숫자 아닌 '동선'을 관리하는 시대로
전 세계 유명 관광지가 밀려드는 인파에 몸살을 앓는 가운데, 강제적인 입장 제한이나 요금 인상 대신 실시간 데이터로 관광객의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분산시키는 이른바 '넛지(Nudge)'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넛지는 강요나 규제 없이 팔꿈치로 슬쩍 찌르듯 부드럽게 개입해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행동경제학 개념인데, 관광 분야에서는 혼잡한 시간·장소를 사전에 알려주고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방문객 스스로 다른 선택을 하도록 돕는 방식으로 응용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최근 발표한 '2026년 관광 트렌드'에서 키워드로 '디지털휴머니티'를 꼽으며, 인공지능(AI)이 여행자의 감정과 취향을 읽어 맞춤형 조언을 건네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전망했다.
서울시, 세계 최초 '공공+민간' 실시간 혼잡도 데이터 개방
국내에서 이런 넛지형 접근의 토대가 된 것이 서울시의 '서울 실시간 도시데이터'다.
서울시는 관광지·공원·주요 상권 등 시내 주요 장소 50곳의 실시간 현장정보를 통합적으로 보여주는 이 데이터를 서울 열린데이터광장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인구 혼잡도는 물론 대중교통 현황과 주차장 잔여 대수, 도로 소통 상황, 날씨까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데, 최근 12시간의 혼잡도뿐 아니라 AI 기반 예측으로 향후 12시간의 혼잡 정도까지 미리 가늠할 수 있다.
이는 시가 보유한 실시간 공공(교통·환경) 데이터와 통신사(KT)의 실시간 인구데이터를 융합해 만든 것으로, 공공과 민간의 실시간 데이터를 결합한 것은 세계 최초의 시도로 평가받는다.
서울시는 이 데이터를 오픈 API로 전면 개방해, 누구든 지도앱이나 AI 스피커, 대중교통 스크린 등 다양한 플랫폼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KT '트립(TrIP)', 해수욕장 혼잡도 신호등부터 축제 인파 예측까지
민간 통신사의 빅데이터 관광 분석 솔루션도 넛지형 관리에 힘을 보태고 있다.
KT엔터프라이즈의 관광분석솔루션 '트립(TrIP)'은 2020~2022년 해양수산부의 '해수욕장 혼잡도 신호등' 서비스에 실시간 데이터를 단독 공급하며 여름철 해수욕장 분산에 활용된 바 있다.
이 솔루션은 축제 기획·분석, 관광 정책 수립, 관광 산업 프로모션 등 다양한 영역에서 쓰이는데, 기존 방문 이력을 기반으로 주말·주중·월별·연휴 기간별 예상 방문객 수를 예측해 숙박시설의 객실·식자재·주차장·인력 운영 계획을 세우는 데도 활용된다.
누적 170여 개 광역·기초자치단체가 이런 스마트 행정 정책 수립에 이 데이터를 활용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관광앱도 '구독형'으로 진화…"관광객 숫자보다 소비 흐름 관리"
지자체 관광 플랫폼의 운영 방식 자체도 달라지고 있다.
마이스·관광테크 기업 이즈피엠피는 지역 기반 스마트관광 플랫폼 '스마트립'을 새롭게 출시했다.
이 서비스는 관광정보와 예약·결제, 쿠폰, 디지털 콘텐츠, 관광 데이터 분석 기능을 하나로 묶은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방식으로, 관광객이 모바일 QR코드로 입장권과 체험상품을 예약·결제하면 그 이동과 결제 데이터가 지역 상권 소비와 자동으로 연결된다.
지자체는 이렇게 쌓인 동선·결제·쿠폰 사용 데이터를 분석해 체류형 상품 개발과 교통노선 조정, 혼잡도 관리 등에 활용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관광객 숫자 자체보다 방문객이 어디에 머무르고 무엇을 소비했는지를 파악하는 일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짚었다.
강제 규제 병행하는 해외…교토·후지산은 '숫자 제한'으로 강경 대응
다만 이런 넛지형 접근만으로 오버투어리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점도 분명하다.
이미 오버투어리즘이 심각해진 일본에서는 넛지를 넘어선 직접적인 규제가 병행되고 있다.
후지산 요시다 루트는 등산 시즌(7월 1일~9월 10일) 동안 1인당 4000엔의 등산료를 부과하고 하루 방문객을 4000명으로 제한하는 강경책을 택했고, 효고현 히메지시는 랜드마크인 히메지성의 입장료를 지난 3월부터 기존 1000엔에서 2500엔으로 대폭 인상했다.
지난해 약 4268만 명이 일본을 찾아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상황에서, 넛지형 데이터 제공과 하드한 총량 규제가 함께 동원되고 있는 셈이다.
"인기 명소 대신 골목·로컬로"…데이터가 유도하는 분산 여행
넛지 기술이 실제로 겨냥하는 최종 목표는 '분산'이다.
한국관광공사는 2026년 관광 트렌드에서 유명 관광지보다 재래시장이나 골목 카페 같은 평범한 일상을 느끼고 싶어 하는 관광객이 늘고 있다고 전망했는데, 이는 실시간 혼잡도 데이터와 맞물려 여행자를 자연스럽게 비인기 지역으로 유도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감지된다.
글로벌 여행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여행 수요가 도시에서 벗어나 2·3차 시장으로 확산되는 '분산형 여행'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으며, 이전에는 규모가 작다고 여겨졌던 시장이 과포화된 인기 시장보다 더 높은 성장 잠재력을 보이고 있다.
데이터 제공을 넘어 실제 행동 변화로 이어질지
전문가들은 실시간 혼잡도 데이터 공개 자체는 이미 상당히 고도화됐지만, 이 정보가 실제로 관광객의 동선 변경으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것이 다음 과제라고 지적한다.
AI가 대안 경로나 비슷한 매력을 가진 인근 명소를 함께 추천하는 등 실질적인 '선택 설계'가 뒷받침돼야 진짜 의미의 넛지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강제적 규제가 관광객 반감을 부를 수 있는 반면, 데이터 기반 넛지는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적다는 장점이 있는 만큼, 향후 국내외 관광 당국이 이런 기술을 어떻게 설계해 활용하느냐가 오버투어리즘 완화의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