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AI 없인 투자도 없다"…스타트업 투자 공식이 바뀌었다

박지은 기자2026.09.11
"AI 없인 투자도 없다"…스타트업 투자 공식이 바뀌었다
딜 수는 줄었는데 투자액은 역대 최대…'합의 자본' 시대 개막 2026년 벤처투자 시장이 양극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스타트업 전략 분석 매체 클로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벤처투자 시장에서는 전체 출자자(LP) 자본의 73.1%가 단 5개 벤처투자회사에 몰렸고, 전체 VC 투자금의 약 75%가 단 5개 스타트업에 집중되는 극단적인 자본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 블로그 저자 제이슨 렘킨은 이를 두고 소수의 검증된 승자에게만 자금이 몰리는 이른바 '합의 자본(consensus capital)' 시대로의 진입을 알리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올해 1분기 글로벌 VC 펀드들은 4월 13일까지 총 236억 달러를 조달하며 분기 기준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는데, 정작 거래 건수 자체는 역대 최저 수준에 머물렀다. 투자금은 늘었지만 그 돈을 받는 스타트업 수는 줄어드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AI 아니면 투자 안 한다"…1분기 딜의 80%가 AI로 이런 자본 집중의 동력은 단연 AI다. 스타트업 통계 분석 매체 썬더빗에 따르면, 지난 4월 공개된 크런치베이스 수치를 보면 투자자들은 2026년 1분기에만 전 세계적으로 약 6000건의 딜을 집행했는데, 이 중 AI 스타트업이 전체 글로벌 VC 투자금의 약 80%를 흡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기 단계 투자 지형도 뒤바뀌었다. 2026년에는 시드·시리즈A 투자금 상당 부분이 1억 달러 이상의 초대형 라운드로 몰리고 있는데, 이런 대형 라운드의 대부분을 AI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소프트뱅크가 오픈AI에 단독으로 400억 달러를 투자한 사례가 대표적으로 거론되는데, 업계에서는 이제 "AI를 쓰지 않으면 투자받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아시아 VC 매니저 69% "AI가 최우선 과제"…성장보다 수익성 이런 흐름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에서도 뚜렷하게 확인된다. 시장조사기관 킨로스 리서치가 발표한 '2026년 아시아 최고의 벤처캐피탈 기업'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 VC 펀드 매니저의 69%가 AI 투자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수치가 투자자들의 전략 자체가 '성장 우선'에서 '수익성 우선'으로 전환됐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회계·투자 자문업계 분석에 따르면 국내 벤처투자 역시 양극화와 대규모 라운드 중심의 자금 쏠림이 뚜렷해지고 있으며, 전체 투자 건수는 감소하거나 정체된 반면 확실한 기술력과 비전을 갖춘 소수 기업에는 수백억 원대 뭉칫돈이 몰리는 '승자독식'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로봇과 자율주행 등 물리적 실체를 갖춘 AI, 이른바 '피지컬 AI' 분야가 국내 스타트업 투자의 새로운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AI라는 단어 안 써도 된다"…비(非)AI 창업자에게도 던져진 숙제 이런 흐름 속에서 AI 스타트업이 아닌 창업자들도 새로운 압박을 받고 있다. 이커머스 플랫폼 쇼피파이가 발표한 '2026년 주목해야 할 주요 벤처캐피털 트렌드' 보고서에서, 투자 전문가 마이클은 "제 경력을 통틀어 이렇게 변화 속도가 빠른 분야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전자상거래 기업이 반드시 생성형 AI 스타트업일 필요는 없지만, 운영 최적화를 위해 자동화와 기계학습을 활용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AI가 사업 성공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설명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며 "가령 반려견 산책 서비스를 운영한다면 굳이 'AI'라는 단어를 남발할 필요는 없지만, AI를 활용해 산책 인력을 조율하고 일정을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짚었다. 이는 이제 AI가 특정 업종을 불문하고 투자 유치의 '기본 소양'이 됐음을 보여준다. AI 네이티브 vs AI 퍼스트 vs AI 에이블드…경계는 흐려져도 방향은 하나 투자 시장에서는 스타트업을 분류하는 새로운 언어도 자리 잡고 있다. AI를 처음부터 핵심으로 설계한 'AI 네이티브'(파운데이션 모델 랩, 에이전틱 AI 기업 등), AI가 핵심 제품이나 차별점인 'AI 퍼스트', 기존 제품·운영을 개선하는 데 AI를 활용하는 'AI 에이블드'로 구분되는데, 2026년 들어 이 경계 자체가 점점 흐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제 AI는 스타트업 사업 모델의 '기반' 그 자체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정부도 제도 손질…투자·사업화·공공조달 '원스톱' 연계 이런 시장 변화에 맞춰 정부 정책도 함께 움직이고 있다. 벤처스퀘어 보도에 따르면 정부가 발간한 '2026년 하반기부터 이렇게 달라집니다' 정책 안내서에는 벤처투자 규제 완화와 정부 연구개발(R&D) 사업화 보증, AI 제품의 공공조달 진입요건 완화 등이 포함됐다. 이번 개편의 특징은 투자와 사업화, 공공조달, 제조AI, 반도체, 지역 전략산업을 서로 연계해 스타트업이 성장 단계마다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손질했다는 점이다. 이는 민간 자본이 소수의 검증된 AI 기업에 집중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초기·중간 단계 스타트업의 자금 조달 공백을 제도적으로 메우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소수 승자독식 구도에서 초기 스타트업이 살아남는 법" 전문가들은 이런 자본 집중 현상이 AI 슈퍼사이클과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한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투자자들의 위험 회피 성향과 검증된 기업에 대한 선호는 단기간에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때문에 초기 단계 스타트업들은 이런 구조적 변화를 장기 추세로 받아들이고, AI 활용 역량을 명확한 비즈니스 성과로 증명할 수 있는 전략을 갖춰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AI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인식이 투자 시장 전반에 자리 잡은 지금, 자금 조달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창업자들에게 남은 숙제는 AI를 얼마나 실질적인 사업 성과로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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