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시간 만에 난제 풀었다"…필즈상 25인 "수학 망친다"
박정아 기자2026.09.12

허준이·테런스 타오 등 25명 공동서한…"문제 풀이는 목표 아닌 도구일 뿐"
수학계 최고 권위인 필즈상 수상자 25명이 인공지능(AI) 기업들의 미해결 난제 풀이 경쟁에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했다.
11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에 따르면 한국계 수학자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를 비롯해 테런스 타오 등 필즈상 수상자 25명은 공동서한을 통해 AI의 수학 문제 풀이 경쟁이 수학계에 장기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서한에서 "문제를 푸는 것은 개념적 이해와 통찰이라는 근본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이자 대리 수단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수학이라는 학문의 본질이 정답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이해와 통찰에 있다는 것이 이들의 논지다.
"이해에는 시간과 인간 간 상호작용 필요"…성과만 좇는 풍조 경계
수상자들은 수학적 통찰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결코 압축될 수 없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이들은 "수학적 이해와 통찰을 얻는 과정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AI가 업무 수행 방식을 변화시키는 상황에서, 애초 그 작업을 통해 달성하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는 AI를 활용한 문제풀이 속도와 결과물에만 초점이 맞춰질 경우, 정작 수학이라는 학문이 추구해온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를 담고 있다.
"수학만의 문제 아니다"…지적 활동 전반에 대한 경고로 확장
필즈상 수상자들은 이번 경고가 수학계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짚었다.
인간의 이해와 사고 과정보다 결과물만 중시하는 풍조가 확산될 경우, 지적 활동 전반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AI가 수학 연구에 미칠 영향을 두고 수학계는 물론, AI 기업과 사회 전체가 대응 방안을 서둘러 논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는 AI 시대에 인간의 사고와 학습 방식 자체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를 묻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오픈AI,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 88시간 만에 풀었다 발표…"에이전트 수천 개 투입"
이번 공동서한이 공개된 시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오픈AI가 최근 AI를 이용해 수학계의 대표적인 7대 밀레니엄 문제 중 하나인 '나비에-스토크스 문제'를 88시간 만에 해결했다고 발표한 직후 나왔다.
오픈AI에 따르면 이 문제 해결에는 수천 개의 AI 에이전트가 동시에 투입됐으며, 이 과정에서 에이전트들이 270만 개의 메시지를 주고받고 약 1300억 개의 토큰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밀레니엄 문제는 미국 클레이수학연구소가 2000년 선정한 7개의 세계적 난제로, 각 문제를 해결하면 100만 달러의 상금이 주어질 정도로 수학계에서 최고 난도로 꼽힌다.
"다른 수학자 아이디어 이용" 논란도…NYU 연구진 문제 제기
다만 이 발표를 둘러싸고는 별도의 논란도 불거졌다.
오픈AI가 문제 해결 과정에서 다른 수학자들의 연구 아이디어를 활용했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미국 뉴욕대(NYU) 쿠란트 수리과학연구소 측에서 이런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는 AI가 인간 연구자들의 선행 연구 성과를 어느 정도까지 참고하고 이를 어떻게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학술 윤리 문제를 제기한다.
AI 문제풀이 경쟁, 갈수록 격화…빅테크 간 '수학 정복' 경쟁도 배경
이번 경고의 배경에는 최근 AI 기업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수학 난제 정복' 경쟁이 자리 잡고 있다.
오픈AI를 비롯한 주요 AI 기업들은 자사 모델의 추론 능력을 과시하는 지표로 수학 올림피아드 문제나 미해결 난제 풀이 성과를 앞다퉈 발표해왔다.
이런 경쟁이 격화될수록, AI가 낸 결과물의 정확성과 독창성, 그 과정에서 인간 연구자의 기여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도 함께 커지고 있다.
AI를 도구로 활용하되 인간의 사고 과정을 어떻게 지켜낼지
이번 필즈상 수상자들의 공동서한은 AI를 활용하는 방식과 목적에 대한 성찰을 촉구하는 메시지로 봐야 한다.
관건은 AI가 문제 해결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도구로 활용되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인간의 이해와 통찰을 기르는 학문적 전통을 어떻게 함께 지켜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다.
수학계를 넘어 과학·연구 전반에서 AI 활용을 둘러싼 이런 논의가 앞으로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