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대신"…브릭스, 공동화폐 아닌 '결제망'으로 우회
한지훈 기자2026.09.12

인도, CBDC 연계 의제로 상정…"공동통화 아니다" 선 그어
브릭스(BRICS) 국가들이 미국 달러 중심의 국제 결제 체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으로, 새로운 공동통화 발행 대신 각국 통화를 직접 연결하는 결제 인프라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인도중앙은행(RBI)은 회원국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CBDC)를 서로 연결하는 방안을 제안했으며, 로이터에 따르면 RBI는 2026년 브릭스 정상회의 의제에 회원국 CBDC 연계를 포함하도록 인도 정부에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완 조시 브릭스 인터내셔널 회장은 ANI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구상에 대해 "탈달러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는 브릭스가 추진하는 결제 체계 개편이 달러 패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새 기축통화 발행이 아니라, 회원국 간 무역과 관광 거래를 좀 더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실용적 목적임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브릭스 페이'는 새 화폐 아닌 '결제 연결망'…2019년부터 논의
이번 구상의 핵심에 있는 '브릭스 페이(BRICS Pay)'는 2019년 처음 제안된 개념으로, 회원국의 국가 통화를 활용해 무역 결제를 지원하는 국경 간 결제 메커니즘이다.
이는 각국의 통화와 결제 시스템을 서로 연결해 거래를 처리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기존에 알려진 '브릭스 단일화폐' 구상과는 결이 다르다.
국경 간 거래에서 결제 절차를 단순화하고 환율 변동에 따른 부담을 줄이는 것이 이 시스템의 핵심 기능으로 거론된다.
브라질과 러시아, 중국의 통화(레알화·루블화·위안화)를 직접 연동하는 방식이 우선 검토되고 있으며, 브라질의 즉시결제 시스템 '픽스(Pix)'의 성공 사례가 이 프로젝트에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질·러시아·중국 3국, 2026년 파일럿 테스트 예정
이 시스템은 아직 정식 출범 전 단계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앞서 브라질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 관련 발언에서, 이 프로젝트가 "브라질의 후임 의장국에 의해 계속될 것"이며 "2026년 말 이전에" 시범 운영이 시작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브라질과 러시아, 중국 3국이 참여하는 파일럿 테스트가 2026년 중 시작될 예정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어디까지나 기술 검증 단계의 시범 운영으로, 전면적인 상용화나 다른 회원국으로의 확대 시점은 아직 불투명한 상태다.
"공식 확정된 공동통화는 없다"…현지 통화 결제 확대가 더 현실적 접근
시장 분석기관들은 브릭스가 실제로 추진하고 있는 방향이 새로운 단일통화 발행보다는, 현지 통화 기반 무역 결제 확대와 국가 간 결제 시스템의 상호운용성 강화에 맞춰져 있다고 짚는다.
신개발은행(NDB) 같은 다자 금융기관의 역할을 확대해 특정 통화나 단일 금융 채널에 대한 의존도를 완화하는 방식이 훨씬 현실적인 접근으로 평가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운영 중인 단일 브릭스 공동통화는 없으며, 2026년 브릭스 확대는 11개 정회원국과 넓어지는 파트너국 생태계라는 이중 구조로 진행되고 있다.
이집트·에티오피아·이란·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 등으로 회원국이 확대된 브릭스는 결제 시스템 구축과 잠재적 기준통화 논의 준비를 이어가고 있지만, 이 역시 구체적 시행 시기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탈달러 아닌 리스크 회피가 목적"…가입 희망국들의 속내
브릭스 가입을 희망하는 국가들의 동기도 반미(反美) 정서보다는 실용적 계산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부분의 브릭스 가입 희망국에게 목표는 '탈달러화' 그 자체가 아니라, 제재 리스크와 금융 마찰, 환율 변동성에 대한 회복력 확보에 있다는 것이다.
인도의 2026년 브릭스 의장국 우선 과제 역시 CBDC 및 디지털 결제 연계 등 결제 상호운용성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에너지 수출국과 물류 허브 국가들의 브릭스 편입은 장기 공급계약과 교역 회랑 투자, 결제 통화 구성 변화 등 간접적인 시장 영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트럼프 "관세 100% 부과할 것"…브릭스 확대 놓고 이미 수차례 경고
이런 움직임에 대해 미국은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4년 브릭스 국가들이 달러를 대체할 통화를 만들거나 다른 통화를 지지할 경우 100%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으며, 2025년에도 브릭스의 반미 정책에 동조하는 국가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는 2025년 7월 말 인도와 브라질에 관세를 부과하면서, 브릭스가 기본적으로 미국에 대항하는 국가들의 모임이라는 인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브릭스가 '공동통화' 대신 '결제망 연결'이라는 방식을 택한 것도, 미국의 직접적인 반발과 관세 위협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적 선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파일럿 테스트가 실제 상용화로 이어질지
전문가들은 브릭스의 이번 CBDC 연계 및 결제망 구축 시도가 달러 패권에 즉각적인 위협이 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공동통화 발행이 아닌 결제 인프라 연결이라는 점에서 의미는 있지만, 실제 국제 무역과 금융 시장에서 달러의 지배적 지위를 흔들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다.
다만 브라질·러시아·중국의 2026년 파일럿 테스트가 성공하고 이것이 다른 회원국으로 확산될 경우, 장기적으로는 국경 간 결제에서 비(非)달러 통화의 활용도가 점진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