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밀도 세계 1위인데 경쟁력은…한국 로봇, 무슨 일이
한지훈 기자2026.09.13

1만 명당 로봇 1012대…'수요 1위'라는 착시
한국은 노동자 1만 명당 산업용 로봇 1012대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로봇 밀도를 자랑한다.
싱가포르(770대)와 중국(470대), 독일(429대), 일본(419대)을 모두 앞서는 압도적 1위다.
하지만 이 수치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밀도 1위는 "로봇을 잘 만들어서"가 아니라, 반도체·자동차·디스플레이·배터리 같은 대형 제조 현장이 국내에 몰려 있어 "로봇을 넣을 공장이 많아서" 나온 수치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 구분을 놓치면 한국의 로봇산업 경쟁력을 실제보다 훨씬 높게 오판하게 된다.
6개국 중 종합경쟁력 '꼴찌'…중국에도 밀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산업연구원 자료를 인용해 분석한 결과, 한국의 로봇산업 종합경쟁력은 미국·일본·중국·독일·스위스 등 주요 6개국 가운데 최하위인 6위로 나타났다.
일본이 1위, 독일이 2위, 미국이 3위를 차지했는데, 한국은 중국보다도 뒤처진 결과다.
세계에서 로봇을 가장 많이 쓰는 나라가 정작 로봇을 만드는 경쟁력에서는 꼴찌를 기록한 셈이다.
산업연구원이 별도로 내놓은 '중국제조 2025 주요 산업의 한·중 경쟁력 비교' 자료에서도 한국은 자동차(전기차·배터리·자율주행 포함)와 로봇, 반도체 등 3대 첨단산업 분야 경쟁력에서 대부분 중국에 추월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소재·부품 국산화율 40%대…"로봇 관절은 여전히 수입"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의 '글로벌 로보틱스 산업 지형 변화' 분석에 따르면, 국내 로봇 소재·부품 국산화율은 40%대에 머물러 있다.
감속기와 정밀 베어링, 액추에이터, 로봇용 AI 소프트웨어 등 로봇의 '관절'을 이루는 부품 상당수를 여전히 해외에서 들여오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내 로봇 생산이 늘어날수록 외국산 부품 수입도 함께 늘어나는 딜레마가 반복되고 있다.
정부가 2030년 목표로 내건 국산화율 80%는 사실 중국이 2024년에 이미 넘어선 57%보다 조금 높은 수준에 불과해, 목표치 자체의 도전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총출하액의 71%가 내수…생산은 중소기업이 98% 담당
같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로봇 기업 총출하액 중 내수 비중이 71.2%에 달해, 수출보다는 국내 시장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를 보였다.
또 로봇 기업 가운데 중소기업 비중이 98.2%에 이르는데, 이는 대형 통합 기업 중심으로 성장한 해외 경쟁국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지점이다.
2024년 한국의 산업용 로봇 신규 설치는 3만50대에 그쳤지만, 중국은 29만5000대로 자릿수 자체가 다르다.
"각 기업이 전 과정 다 담당"…분업 구조 못 갖춘 게 발목
한국로봇산업협회는 이런 경쟁력 저하의 원인으로 산업 내 분업 구조의 부재를 꼽는다.
중국을 비롯한 경쟁국들은 기업별로 전문 영역에 특화한 뒤 서로 분업하는 방식으로 효율을 높이는 반면, 한국은 개별 기업이 부품 생산부터 조립, 소프트웨어까지 가치사슬 전 단계를 홀로 담당하다 보니 비용이 늘고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중국은 보조금 지급과 연구개발(R&D) 비용 100% 공제 등 정부 주도의 집중적인 투자 확대, 글로벌 로봇 기업에 대한 공격적인 인수합병(M&A)까지 동원하며 한국 추월을 본격화했다.
1인용 전동스쿠터의 원조인 미국 세그웨이가 유사 제품을 만들던 중국 나인봇에 인수된 사례처럼, '모방 기업이 오리지널 기업을 인수'하는 역전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지능형 로봇 시장 연 12% 성장하는데…韓 'AI 로봇' 경쟁력은 낮은 수준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조한나 선임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지능형 로봇 시장 규모는 2020년 708억 달러에서 2026년 1264억 달러로 연평균 12.29%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주요국들이 제조업 현장에 인공지능(AI)이 탑재된 지능화 로봇 투입에 집중하고 있는데, 정작 한국의 AI 로봇 경쟁력은 높지 않은 상황이라는 게 보고서의 진단이다.
"中, 로봇 현장 데이터 빠르게 쌓는데"…韓, 규제·실증 문턱에 발목
지난달 베이징에서 열린 '2026 세계로봇대회(WRC)'에는 300여 개 기업이 참가해 2000개가 넘는 로봇과 관련 제품을 선보였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로봇 보급과 현장 데이터 축적을 동시에 진행하는 동안, 한국이 규제와 실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제조업이라는 기존 강점조차 '피지컬 AI' 경쟁력으로 연결하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지금은 더 많은 로봇이 실제 현장에 들어가 쓰여야 할 때"라며 "현장에서 얻은 경험과 데이터를 기술 개발로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격이 아닌 협력 모델로"…전문가들 정책 전환 제언
산업연구원 조은교 박사는 이런 상황에 대한 대응 방향으로 중국 추격·추월 전략에서 벗어난 새로운 접근을 제안했다.
그는 중국을 제조강국으로 인정하고, 업종별 밸류체인을 분석해 한국이 우위를 가진 지점과 중국의 수요를 발굴해 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짚었다.
중국이 선점하려는 미래 생태계에서 한국의 자리를 확보하는 전략과 중국의 기술·생산기반·데이터와 한국의 아이디어를 접목한 새로운 협력 모델 발굴이 향후 한중 산업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부품 국산화와 분업 구조 개편을 얼마나 빠르게 이뤄낼지
전문가들은 한국이 로봇 활용 규모에서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지만, 이를 실제 산업 경쟁력으로 전환하지 못하는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소재·부품 국산화율을 실질적으로 끌어올리고, 기업 간 분업 생태계를 구축하며, 규제 완화를 통해 로봇 실증 데이터를 빠르게 축적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로봇을 쓰는 나라가 정작 그 로봇을 만드는 경쟁에서는 밀려나는 상황을 언제까지 안고 갈 것인지가, 향후 한국 제조업 전반의 미래 경쟁력을 가늠할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