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8000만 원인데 이자가 0%"…퇴직연금 계좌 열어보니

최윤서 기자2026.09.14
"8000만 원인데 이자가 0%"…퇴직연금 계좌 열어보니
예금 만기 끝났는데 그대로 방치…"대기성 자금 0% 이자"에 화들짝 퇴직연금 계좌를 오랜만에 들여다본 직장인들이 잇따라 충격에 빠지고 있다. 인천에 사는 직장인 김모 씨(58)는 최근 자신의 퇴직연금 계좌를 열어봤다가 깜짝 놀랐다. 차곡차곡 쌓인 적립금이 어느덧 8000만 원에 달했지만, 예금 상품의 만기가 끝난 뒤 별다른 운용 지시를 내리지 않아 이자가 사실상 0% 수준인 '대기성 자금'으로 방치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김씨만의 사례가 아니다.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을 설정하지 않았거나, 만기 후 운용 지시를 제때 하지 않은 탓에 적립금이 사실상 이자가 붙지 않는 상태로 잠자고 있는 사례가 직장인들 사이에서 속속 확인되고 있다. 안정형 2.6% vs 적극투자형 14.9%…등급별 최대 5.7배 격차 실제로 디폴트옵션을 설정한 경우에도, 어떤 등급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수익률 격차가 상당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2025년 말 기준 디폴트옵션 위험 등급별 수익률을 보면 안정형 2.6%, 안정투자형 7.5%, 중립투자형 10.8%, 적극투자형 14.9%로 집계돼, 가장 낮은 등급과 가장 높은 등급 사이에 5.7배에 달하는 격차가 벌어졌다. 1억 원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1년 만에 1230만 원 넘게 차이가 나는 셈이다. 실제로는 복리 효과와 수수료, 상품 수익률 변동까지 더해지면 이런 격차가 시간이 갈수록 더 크게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10년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등급 선택에 따라 최대 3740만 원까지 차이가 벌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가입자 85%는 여전히 '안정형' 쏠림…"원금 보장이라니까 안심" 문제는 이런 격차를 알면서도 정작 대다수 가입자가 가장 낮은 수익률 등급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2025년 말 기준 디폴트옵션 적립금은 53조3000억 원, 지정 가입자는 734만 명에 달하지만, 이 중 85%가 안정형에 쏠려 있어 전체 평균 수익률은 3.7%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연금 통지서를 받고 디폴트옵션을 지정하라는 알림이 와도 그냥 안정형으로 두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원금 보장이라는 말에 안심하고 별다른 고민 없이 최저 위험 등급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것이다. 6주 방치하면 자동으로 '안정형' 편입…"몰라서 손해 보는 구조" 이런 쏠림 현상의 배경에는 제도 설계 자체도 한몫하고 있다. 디폴트옵션은 2022년 7월 도입됐는데, 가입자가 일정 기간(통상 6주) 동안 운용 지시를 하지 않으면 사전에 지정해둔 상품, 대개 가장 보수적인 안정형으로 자동 편입되는 구조다. 이 때문에 제도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가입자일수록 자동으로 저수익 등급에 묶이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2025년 말 기준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공시된 디폴트옵션 상품은 324개, 이를 운영하는 사업자는 41개사에 달해, 정작 가입자 입장에서는 어떤 상품을 골라야 할지 판단하기 쉽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원리금보장형 vs 실적배당형, 3배 이상 수익률 차이 디폴트옵션 등급 안에서도 상품 구성에 따라 수익률 차이는 상당하다. 실적배당형(펀드 등에 투자)의 수익률은 13.25%인 반면, 원리금 보장형(정기예금 등)은 4.08%에 그쳐 3배 이상의 차이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증권사의 디폴트옵션 상품은 연간 30%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하기도 했는데, 이런 사례는 최근 코스피 호황과 금융시장 안정이 맞물리면서 나타난 흐름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한 증권사의 적극투자형 상품은 3년 누적 93.17%의 수익률을 공시하기도 했다. "정기적으로 계좌 확인해야"…전문가들, 상품 재점검 권고 전문가들은 퇴직연금을 한 번 가입한 뒤 방치하지 말고, 정기적으로 계좌 상태와 상품 수익률을 확인할 것을 권한다. 본인의 적립금이 들어가 있는 상품의 수익률과 다른 선택지들의 수익률을 비교하고, 통합연금포털의 디폴트옵션 비교공시 등을 활용해 주기적으로 점검한 뒤 필요하면 다시 지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입자가 디폴트옵션이 자동 발동되기 전에 적극적으로 상품을 직접 선택하고 싶다면, 대기 기간 없이 곧바로 상품을 고를 수 있는 '옵트인(opt-in)' 방식도 활용할 수 있다. "무조건 고위험 상품이 답은 아니다"…연령·은퇴시점 고려해야 다만 전문가들은 무조건 수익률이 높은 등급으로 옮기라는 뜻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위험 등급별 최대 낙폭은 과거 데이터를 기준으로 한 것일 뿐, 미래의 손실 폭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인의 연령과 근속기간, 은퇴 시점, 다른 자산의 비중 등에 따라 적정 위험 등급이 달라지는 만큼, 큰 금액을 옮기기 전에는 가입 사업자의 프라이빗뱅킹(PB)센터나 공인 재무설계사(CFP)와 상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입자들이 방치된 퇴직연금을 얼마나 빨리 재점검할지 퇴직연금이 노후를 준비하는 자산인 만큼,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한 투자 자산으로 인식을 바꿔야 한다. 특히 예금 만기 이후 별다른 지시 없이 방치되는 대기성 자금이나, 제도를 잘 몰라 최저 수익률 등급에 자동 편입되는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가입자 스스로 계좌 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8000만 원 계좌를 열어본 김씨의 사례처럼, 많은 직장인들이 자신의 퇴직연금이 실제로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부터가 노후 자산 관리의 첫걸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를 권유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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