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헌법불합치 7년 만에…미프진 도입 확정
박정아 기자2026.09.15

내년 1분기 정식 유통…임신 9주 이내, 병원 내 처방으로 제한
정부가 먹는 임신중지 약물 '미프진'(성분명 미페프리스톤·미소프로스톨)을 내년 1분기 안에 국내에 정식 도입하기로 했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은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보건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함께 이 같은 도입 방안을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보고했다.
이는 지난 2019년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자기낙태죄와 의사낙태죄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무려 7년 만이다.
가장 큰 쟁점이었던 복용 허용 주수는 임신 9주(63일) 이내로 결정됐으며, 의사의 처방에 따라 병원 내에서 복용하도록 할 계획이다.
도입 초기 2년간은 의료기관 내에서 의사가 직접 처방·조제를 담당하고, 이후 부작용과 안전성 등을 검토해 약국 조제로 점진 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식약처에 따르면 현재 현대약품이 제출한 허가 신청 건에 대한 심사가 상당 부분 진척된 상태다.
30만~50만 원대 '암거래' 근절이 목표…불법판매 적발 3189건
이번 도입의 배경에는 그동안 방치돼온 음성적 유통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현재도 인터넷에서 '미프진'을 검색하면 판매 관련 게시글을 볼 수 있는데, 가격은 30만~50만 원대에 달하며 정품 여부와 유통기한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식약처가 2021년부터 올해 5월까지 적발한 임신중지 의약품 온라인 불법판매·알선 광고만 3189건에 이른다.
성평등가족부는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약물의 불법 유통과 대체재 성행으로 여성의 건강이 위협받고, 수술 또는 약물 복용을 선택할 권리 자체가 제한돼왔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치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7월 임신중지약을 정식 처방받을 수 있도록 검토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후속 조치이기도 하다.
의료계 "도입 반대 아냐, 법적 보호 장치가 우선"
의료계는 미프진 도입 자체를 반대한다기보다, 장기간 지연된 법제화 과정을 사실상 건너뛴 채 정부가 '선(先) 도입, 후(後) 논의' 수순을 밟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산부인과의사회는 의사의 양심적 처방 거부권과 미성년자 처방 기준 마련 등 제도적 공백을 먼저 메워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특히 임신중지약은 불완전유산이나 과다출혈 등 합병증이 발생할 경우 수술적 처치와 응급의료 연계가 필요할 수 있는 만큼, 후속 수술과 응급이송이 가능한 의료기관 요건을 정하고 이에 따른 수가 보상 등 제도적 장치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의사회는 "임신중지 문제와 미프진 도입은 개별 의료기관의 판단이나 행정부의 지침만으로 풀 수 있는 사안이 아니며, 법개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의약분업 원칙' 충돌 논란…약사회 "이중점검 공백" 우려
도입 초기 2년간 병원 내에서 의사가 직접 처방·조제하도록 한 방침을 두고도 다른 각도의 논란이 불거졌다.
통상 처방과 조제를 의사와 약사가 나눠 맡는 의약분업 원칙에서 벗어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약사회 쪽에서는 이런 '원내조제' 방식이 약사의 이중점검 기능을 배제해 안전상 공백을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한성숙 국무총리는 이와 관련해 도입 방안을 원내조제를 포함해 "보수적으로 설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시민단체 간 입장도 극과 극…"만시지탄" vs "도입 중단해야"
이번 발표를 두고 시민사회 내부에서도 입장이 엇갈린다.
여성 건강권을 강조하는 쪽에서는 이번 결정을 7년간 미뤄져 온 조치가 뒤늦게라도 이뤄졌다는 의미에서 "만시지탄"으로 평가하며, 오남용을 막기 위한 엄격한 관리와 미성년자 보호, 저소득층·소외지역 주민에 대한 접근성 보장 등 후속 조치가 이어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시민단체 프로라이프 등에서는 임신 9주 이내 사용과 초기 2년간 원내 처방·조제 방침의 근거 자체를 문제 삼으며 도입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국회에서도 이견이 표출됐는데, 윤용근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4일 미프진을 마약에 빗대며 도입에 반대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임신 중지' 용어 놓고도 온라인서 갑론을박
정책의 내용뿐 아니라 명칭을 둘러싼 논쟁도 확산되고 있다.
정부 발표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임신 중지'라는 용어의 적절성을 두고 이견이 이어지고 있는데, 일부 이용자들은 이 표현이 의학적 의미를 명확히 전달하지 못하고 일시적 정지나 재개 가능성을 연상시켜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법적 공백을 메우는 입법이 실제로 뒤따를지
전문가들은 이번 도입 방안이 신속한 행정적 조치인 것은 분명하지만, 법적 불확실성을 해소하려면 국회의 후속 입법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한다.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7년간 이어진 입법 공백이 이번 조치만으로 해소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의료계가 요구하는 의료인 법적 보호 장치와 응급대응체계, 약사회가 우려하는 의약분업 원칙, 시민사회 내 찬반 진영의 입장 차를 정부가 어떻게 조율해 나가느냐가 향후 제도 정착의 관건이다.
내년 1분기로 예정된 정식 도입까지, 이런 쟁점들을 둘러싼 논의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